| 한자 | 무덤領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지명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봉득이|봉득의 처|봉득의 어머니 |
| 모티프유형 | 봉득이의 억울한 죽음과 마을 사람들의 봉제사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무송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무송현(撫松縣)에서 무덤령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지명 설화.
「무덤령」은 투도강과 송강하가 만나는 곳 동쪽에 작은 고갯마루의 지명 유래를 설명한 설화이다. 이곳의 마을에 부지런하고 착하며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봉득이가 살았다. 봉득이는 고갯마루 너머의 처자와 결혼했는데 웬일인지 점점 부부 사이가 안 좋아졌다. 그러다가 명절날 고개 너머 부인의 본가에 봉득이 부부가 갔다가 아내만 돌아오고 봉득이는 실종되었다. 봉득이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3년간 제사를 지내며 봉득이의 영혼을 불러 사라진 사연을 알려 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봉득이의 아내는 귀신에 씌었는지 덜덜 떨며 내연의 관계인 융구와 함께 봉득이를 죽인 사건을 스스로 자백했다.
봉득이의 어머니는 며느리를 관가에 끌고 가 신고하였고, 고갯마루에서 봉득이의 시체를 찾았는데 3년간 썩지 않은 모습이었다. 봉득이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한 주민들이 명절이면 봉득이의 무덤에 가 무덤을 가꾸고 제사를 지냈다. 세월이 흘러 봉득이의 무덤은 이웃들에 의해 작은 산봉우리처럼 변했고, 사람들은 이곳을 ‘무덤령’이라 부르게 됐다.
투도강과 송강하가 만나는 곳 동쪽에 작은 고갯마루가 있는데, 이곳을 ‘무덤령’이라 불러왔다. 이 고개 기슭에 작은 마을에 봉득이라는 맘씨 착하고 부지런한 총각이 살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과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일도 잘하고 손재간도 있어 여느 집보다 풍족하게 살았다.
세월이 흘러 봉득이는 고개 너머 마을에 사는 생면부지의 처녀를 아내로 맞았다. 결혼한 후에도 봉득이는 여전히 효성이 극진했고, 아내에게도 잘해 이들 네 식구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봉득이의 아내는 자주 화를 냈고, 봉득이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어느덧 정월 대보름이 되어 명절을 보내는데, 봉득이의 아내가 친정에 다녀오자고 하였다. 봉득이는 아내의 갑작스런 말에 의심이 들었으나, 거절하지 못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친정에 간다던 며느리가 뜻밖에 혼자서 돌아왔기에 시어머니는 왜 혼자 오냐 물었다. 이에 봉득이의 아내는 봉득이가 혼자 오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며 본가에 가다가 뒤를 보니 봉득이가 없어서 지금까지 찾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봉득이의 동생과 어머니는 고개 너머로 가는 길을 더듬으며 봉득이를 찾아다녔다. 이웃을 동원해 며칠간이나 찾아봤으나, 봉득이를 찾을 수 없었다.
봉득이 아내는 전과는 달리 문밖에도 나가지 않고 누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집안 식구들에게 자신의 청백함을 보여주었다. 봉득이 식구들은 매일매일 슬픔 속에 지내다 점쟁이와 도사까지 모셔와 보았으나, 여전히 봉득이의 행방이 묘연하였다. 봉득이 어머니는 시체라도 찾아내겠다고 집 한쪽에 아들의 제사상을 차려놓았다. 그러고 매일매일 제사를 지내며 봉득이의 영혼만이라도 돌아오라고 하소연하였다. 그렇게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조용히 살던 봉득이 아내가 갑자기 웃으며 몸을 떨며 봉득이는 자신이 고개 너머에 살던 융구와 함께 죽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왜 봉득이를 죽였냐고 물었다. 봉득이의 아내는 자신은 이미 시집오기 전에 융구의 사람이었고, 융구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융구와 짜고 봉득이를 죽였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봉득이의 시체는 어디 있느냐고 다그치자 며느리는 융구가 고갯마루에 파놓은 구덩이에 몰래 묻었다고 했다.
화가 난 어머니는 며느리를 관청으로 끌고 갔다. 원님이 즉시 융구를 붙잡은 뒤 몇몇 아전들을 데리고 며느리를 길잡이로 봉득이가 묻혀있는 고갯마루에 찾아가 땅속에서 봉득이의 시체를 파내고, 며느리와 융구의 죄행을 확인하였다. 봉득이의 시체는 생전 여러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서인지, 아니면 억울하게 죽어서인지 썩지 않은 채 생전의 모습으로 보전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고갯마루로 달려와 봉득이의 죽은 넋을 위로하였다.
생전에 봉득이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청명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항시 산소에 찾아가 산소를 가꾸고 제(祭)까지 지내주었다고 전해왔다. 유구한 세월이 흘러 봉득이의 무덤은 이웃들에 의해 작은 산봉우리처럼 높아졌고, 이곳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이 고개를 ‘무덤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덤령」의 모티브는 ‘봉득이의 억울한 죽음과 마을 사람들의 봉제사(奉祭祀)’이다. 이 설화에서 봉득이는 아내와 내연남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봉득이 어미의 지극한 정성으로 천지신명이 감동하여 봉득이의 아내가 스스로 모든 죄상을 실토케 한다. 모든 사실을 안 봉득이 어미와 마을 사람들은 봉득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준다. 평소 봉득이의 효성 및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이 설화는 효성 및 타자에 대한 애정이 인간은 물론 신까지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