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革命軍 골짜기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김일성 |
| 모티프유형 | 항일 유격 대원의 위기 대처 능력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8년 10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안도현(安圖縣)에서 혁명군 골짜기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지명 설화.
「혁명군 골짜기」는 송강(松江) 동남쪽에 있는 산골짜기의 지명 유래를 설명한 설화이다. 과거 일본이 중국과 조선을 침략했을 때 김일성의 항일 유격 부대가 일본의 토벌군을 교묘한 전술로 따돌리거나 물리치곤 했었다. 김일성이 이 산골짜기에서 부대를 키우며 일본 토벌군을 막아냈다고 해서 이곳을 ‘혁명군 골짜기’라 부르게 되었다.
송강 동남쪽 깊숙한 산골짜기를 당지 사람들은 ‘혁명군 골짜기’라 부른다. 일본이 중국과 조선을 침략하던 시기 어느 해 겨울에 일본군 토벌대가 깊숙한 산골짜기로 들이닥쳤다. 밀정의 첩보를 받고 밀영의 유격대를 일망타진하려고 한 것이다.
토벌대 대장은 항일 유격대장을 잡거나 죽일 시 큰 상금을 받을 수 있어, 유격부대가 숙영하고 있는 밀영으로 달려들었다. 토벌대는 김일성 유격부대로 김일성을 잡고자 숙영지를 겹겹이 포위하고 박격포와 총을 마구 쏘아댔다. 김일성 부대의 반격이 없어 의아한 토벌대가 숙영지를 수색해보니 유격대원은 없고 헌 천 조각과 풀로 만든 허수아비밖에 없었다. 토벌대 대장은 김일성 부대를 놓쳤다는 것을 알자, 밀정 왕가를 군도로 베어 죽였다. 김일성은 일본군 토벌대가 밀영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비밀 연락원에게 들은 후, 병력의 열세를 느끼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김일성 총지휘관은 유격전에서 교묘한 전술로 수차례 일본군 토벌대를 골탕 먹였다. 그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심산 밀림 속에서 항일 유격대를 거느리고 중국의 항일 연군 부대와 합동 작전을 진행했다. 이때 김일성은 장병들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말하며 전략적으로 부대를 이끌고 밀영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밀정을 죽였지만,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했던 토벌대장은 부하들에게 유격부대의 종적을 찾으라고 호통을 쳤다. 유격부대는 토벌대를 헛물만 켜게 했기에 사기가 점점 높아졌다. 이때 유격대원들에게 신을 거꾸로 신고 걸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유격대원들은 김일성 총지휘관의 전술이 뛰어남을 잘 알기에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밤중 일본군 토벌대가 유격 부대의 거꾸로 난 발자국을 발견하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토벌대장은 유격대원 절대 놓치지 말라며 닦달했고, 유격 부대가 향한 방향과 반대편인 북쪽을 수색해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함박눈이 내려 더는 유격대원들의 발자국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교묘한 전술로 일본군 토벌대를 따돌린 유격 부대는 비밀리에 어느 깊숙한 골짜기에 유숙하였다. 김일성이 인솔하는 항일 유격 부대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고 병력을 키우며 일본군 토벌대와 싸웠다. 일본군 토벌대가 여러 차례 이 골짜기로 쳐들어 왔지만, 김일성 부대는 그때마다 일본군 토벌대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당지의 사람들은 이 산골짜기를 ‘혁명군 골짜기’라 지어 불렀다.
「혁명군 골짜기」의 모티브는 ‘항일 유격대원의 위기 대처 능력’이다. 항일 유격대는 비정규 무장 단체로 적의 통치 구역과 점령 구역, 인접 지역에서 분산, 유동, 습격이라는 방식으로 적을 공격했다. 곧 적이 공격하여 나오면 퇴각하고, 적이 퇴각하면 진격했으며, 적이 피로하면 타격하고, 적이 도망가면 추격하는 등 여러 전법을 구사했다. 따라서 항일 유격대의 편제를 될수록 간소화했으며, 경무장을 갖추고 비정규 습격을 주요 작전 수단으로 삼았다. 또한 유격전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고도의 이동성·기민성·주동성·진공성·신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항일 유격대의 전법, 즉 규모의 간소화, 기민성과 신속성 등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