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부엌돌이 터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부엌돌이|관리|아전|환자 |
| 모티프유형 | 부엌돌이의 인간애와 의술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5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천불지산 |
| 관련 지명 | 길림성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부엌돌이 터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부엌돌이 터」는 송화강 근처 천불지산에 부엌돌이가 살던 곳의 유래를 설명한 설화다. 천불지산에 부엌돌이가 홀로 도를 닦으며 살았고 그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하여 근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약초를 잘 알았고 천불지산과 다른 산의 약초를 캐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는 보수를 받지 않고 떠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에게 관가의 사람이 찾아와 높은 분의 아들이 병에 걸렸으니 환자를 봐달라고 하였다. 이에 부엌돌이는 약초 몇 개를 주어 높은 분 아들의 병을 낫게 하였다.
그 후 부엌돌이는 유명한 절과 사찰을 보러 다녔다. 부엌돌이는 십여 년 후 다시 천불지산의 거처로 와서 홀로 도를 닦다 죽었다. 그가 살던 천불지산 자락에는 거주하던 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송화강 근처 가난한 부엌돌이가 살았는데 학자나 승려와는 달리 한의학을 연구하고자 천불지산에 들어온 것이라 전해진다. 어느 날 천불지산 아랫마을에 부엌돌이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민요처럼 엮어 타령처럼 다음과 같이 읊조리기도 했다.
돌돌 흔한 돌
돌바위 까다가
부엌을 쌓았소
바위돌 부엌돌
산속에 돌이요
천년돌 만년돌
선재 선재라
부엌돌이는 마을에 한 해나 두세 해에 한 번 돌아다니며 도사들이 자주 말하는 ‘선재’란 말을 하며 구걸하였는데, 여느 마을 사람마다 그를 후하게 맞아주었다. 부엌돌이는 불문(佛門)에 입문해 불도를 닦는 것은 아니고 홀로 도(道)를 닦는 산사람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였다. 이는 부엌돌이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내 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예전 큰비가 내려 골물이 불어 한 사람이 물에 잠긴 채 버드나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이때 부엌돌이가 그것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물속에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했었다. 또한 그는 산속에서 꿀을 따다가 곰한테 봉변을 당한 사내의 목숨도 구해주었다.
이번에도 산속에서 사람 살리라는 소리가 들려 부엌돌이가 다가가 보니, 사람이 높은 나무꼭대기에 올라가 있었고, 나무 밑에는 큰 호랑이가 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엌돌이가 보니 호랑이 등에 화살 한 대가 꽂혀 있었다. 나무 위의 사내는 사냥꾼이라고 생각했다. 부엌돌이는 나무 위 사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울음소리로 부엌돌이에게 경고만 할 뿐 나무 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부엌돌이는 호랑이가 불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횃불을 만들어 호랑이에게 다가갔고, 나무 밑에 불을 붙여 호랑이를 쫓아내었다. 사내는 부엌돌이에게 감사를 전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부엌돌이에겐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가 자식을 못 낳고 병으로 죽었다. 그 이후 부엌돌이는 산속에서 은거하며 도를 닦고, 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 의원은 아니지만 천불지산이나 다른 산의 약재를 많이 알기에 환자를 발견하면 약재를 선뜻 내놓곤 했다. 부엌돌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결혼을 권하고 사람과 더불어 살라고 했다. 그러나 부엌돌이는 거절하고 여전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보살피곤 했다. 그는 진맥하고 자신이 구하지 못할 상황이면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을만한 병이면 열흘이건 석 달이건 끝까지 환자를 돌봐주고 돈을 받지 않고 떠나곤 했다.
어느 날 부엌돌이가 사는 산속에 관가의 두 아전이 찾아 왔다. 소문을 듣고 왔다면서 관가 어르신의 아들이 병에 걸렸으니 봐달라고 하였다. 부엌돌이는 사람이 붐비는 도회지나 돈과 권세 있는 사람과 인연이 없어 꺼려졌다. 그래도 일단 아들의 병에 대한 증세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가의 아전은 어르신의 아들이 밤마다 악몽을 꾸는지 헛소리를 자꾸 해서 옆 사람들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부엌돌이는 천불지산의 약초 몇 뿌리를 주며 달여 먹으라 하며, 병이 낫지 않으면 또 오라고 하였다. 두 아전은 난감한 기색을 지으며 함께 가서 환자를 봐주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부엌돌이는 벼랑에 굴러떨어져 길을 가지 못한다며 거절하였다. 두 아전이 약초를 받아 어르신의 아들에게 달여 먹였고, 아들의 병이 나아 관가의 어르신이 비단 천으로 지은 도포를 선물로 전하라 하였다. 아전이 부엌돌이를 찾아갔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고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나 부엌돌이가 또다시 민간에 나타났다. 부엌돌이는 천하의 절간이나 사찰을 돌아다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속에 홀로 은거하여 한평생을 살다 저세상으로 떠났다. 지금은 부엌돌이가 살아가던 곳에 빈터만 남아 있다.
「부엌돌이 터」의 모티브는 ‘부엌돌이의 인간애와 의술’이다. 이 작품에서 부엌돌이는 세상을 돌며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제 일인 양 도와준다. 자신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때 곤경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약초를 통한 의술로써 아픈 사람들을 구명하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의 떠돌이 삶, 인간애, 의술 등 범상치 않은 소재가 훗날 알려지면서 이 전설이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