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王子늪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왕자|시종 |
| 모티프유형 | 발해 왕국 왕자의 사냥과 승냥이 떼의 습격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2년 5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무송현(撫松縣)에서 왕자늪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1982년 5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백산시 무송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박영일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두도송화강 기슭에 마르지 않는 왕자늪이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 때 백두산에 늘 사냥 다니는 왕자가 있었고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사냥 다니길 즐겼는데 이번 사냥엔 웬일인지 나이 어린 시종 두 사람만 데리고 왔다.
사냥을 나와 이틀씩 산에서 잠을 자며 사냥했으나 이틀 밤을 넘긴 적은 별로 없었다. 왕자 일행은 백두산 기슭으로 왔다. 이날은 웬일인지 동물을 볼 수 없었다. 겨우 꿩 두어 마리를 사냥했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안개가 내려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산기슭에 마을이 있으면 묵으려 했으나 찾지 못해 결국 산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이때 어디선가 어린애 울음소리 같은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사방에 시퍼런 불이 무수히 나타났다. 시종에게 물으니 흉악한 승냥이 무리인 것 같다고 하여 말을 타고 수림을 벗어나기로 하고 한동안 내달렸는데, 백두 호랑이가 앞길을 막았다. 왕자는 시종에게 대궐로 가서 원병을 요청하라고 명하자 시종이 말을 돌려 가는데 승냥이 무리가 따라왔다. 왕자가 말을 채찍질하며 정신없이 달리다가 늪 속에 빠졌다. 허우적거리다가 늪 가운데 섬 같은 풀숲으로 들어갔다. 사위를 살피니 무수한 불빛(승냥이 눈빛)이 늪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뿐 늪 속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이튿날 날이 밝아오자 왕자가 사위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승냥이들이 늪을 둘러싸고 있을 뿐 뛰어들지 못했다. 그 까닭은 몇 마리 승냥이가 늪 속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것을 보자 승냥이들은 왕자가 늪에서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는 얼마간 마음을 놓고 왕궁에서 사람이 오길 기다리며 사흘간 풀잎으로 연명했다. 왕자를 찾는 소리가 들려 왕자는 구사일생하였으나, 자신과 함께 온 시종들은 승냥이 무리의 먹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원병을 파할 수 있었던 것은 훗날에 알게 되었다. 왕자가 두 시종만 데리고 나간 것을 알게 된 발해 왕이 꿈자리가 사나워 이튿날 많은 사냥꾼과 시종들에게 왕자를 찾으라며 백두산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후에 왕자는 자신이 구명줄이 되었던 이 늪에 해마다 제사를 두 번씩 지냈고 당지 사람들은 이 늪을 왕자늪이라 부르게 되었다.
「왕자늪」의 모티브는 ‘발해 왕국 왕자의 사냥과 승냥이 떼의 습격’이다. 중국 동북 3성은 옛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조선족 설화에서도 고구려, 발해와 관련한 것들이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새롭다. 이들 설화는 대체로 고구려, 발해가 전략적 요충지마다 산성을 축조하여 군사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증거물을 바탕으로 전승되고 있는 설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발해의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승냥이 떼의 습격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지만, 어느 시기 어느 왕자인지는 구체적이지는 않다. 한인들의 삶의 공간이 곧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古土)였기에 옛 향수를 자극해 한민족의 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와 같은 설화를 형성해 전승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