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석」

한자 望子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길림시 교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용녀|아들 수일|어머니|죽은 남편|스님
모티프유형 아들의 출가와 어미의 기다림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5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길림시 교하시
정의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 교하시(蛟河市)에서 망자석(望子石)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개설

「망자석」은 송화강 기슭의 돌의 유래를 설명하는 설화이다. 송화강 상류에 용녀와 어머니가 살았다. 용녀는 두만강에서 얻은 여아로 아버지는 용녀를 구하다가 죽고 용녀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용녀가 크자 청혼이 사방에서 들어왔다. 어머니가 다 거절하였는데, 어느날 용녀가 애를 밴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가정의 불화가 되었고, 용녀는 자살하려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어머니의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용녀가 사내와 통정해 가진 아이가 아니라 샘을 마시고 생긴 하느님이 점지한 아이라고 하였다. 이에 어머니는 오해를 풀고자 용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홀로 살다 죽고 말았다. 한편 용녀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산에서 아이를 낳았고, 집으로 와 홀로 아이를 키웠다.

아들의 재능이 뛰어나 절에 들어가 '수일'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여러 군데의 절을 돌아다니다 속리산 절로 들어갔다. 용녀는 절에 들어간 아이를 그리워하다 몸이 돌로 굳어 망자석이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5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교하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박유복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송화강 상류 어느 언덕에 초가집 몇 채가 있었는데 그 중 연로한 여인과 그녀의 외동딸이 사는 집이 있었다. 그들은 빈곤했지만 화기애애한 가정이었다. 외동딸 용녀는 자색이 예쁘고 인사성도 밝아 성인이 되자 동네방네에서 청혼하러 왔으나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딸 아이가 헛구역질하며 배가 불러오는 것이었다. 남자와 잔 적이 없기에 의아해하며 걱정했고 용녀는 죽은 아버지를, 어머니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가 이 재난을 막아주길 바랐다.

본래 용녀의 부모님은 화목했으나 자식이 없어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비가 내려 두만강이 많이 불어났는데 강물을 구경하다 둥그런 검은 함지박을 보았다. 그 안에서는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남편이 물에 뛰어들었고, 아이는 구했으나 남편이 그 일로 죽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음을 불사하고 구한 여자아이를 키우며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던 중 남편이 꿈에 나타나 두만강 물에서 구한 아이니 용의 후손일 것이라며 '용녀'라고 이름을 지으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용녀를 정성껏 잘 키워왔는데 이런 망측한 일이 일어나 심란하였고, 더욱이 용녀가 갑자기 사라져 찾아 헤매게 되었다. 남편이 꿈에 나타나 용녀의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은 어느 사내와 자서 생긴 게 아니라 뒷산의 샘물을 마셔 아기를 가진 것이며, 하느님이 점지해 준 아이이니 용녀를 탓하지 말고 아이를 낳도록 하라고 했다.

용녀 어머니는 용녀를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어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를 알 리 없던 용녀는 자살하려고 산에 가서 나무에 목을 매어보고 두만강에 뛰어들었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산속에서 나날을 보내다 배가 불러 아들을 낳게 되었다.

용녀는 아이를 낳다 정신을 잃어 짐승의 먹이가 될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때 한 스님이 와서 짐승을 쫓아냈고, 용녀가 아이를 밴 이유를 설명하며 아이가 큰 인재가 될 것이라 하였다. 사실을 알게 된 용녀는 아들을 안고 어머니가 홀로 살아가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홀로 눈물로 살아가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제를 올리고 아들을 홀로 키웠다. 아들이 6살이 되자 천불지산 속의 절에 들어가 도를 닦게 되었는데, 재능이 출중해 더 큰 절에 들어가라 하였다. 이에 두만강 하류의 오룡사에 갔다가 오봉산에 있는 주사사(朱砂寺)(일명 오봉사)로 가서 몇 해 간 머물다 운주사에 갔다가 병자(丙子) 난리가 나기 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용녀에게 자신은 다 컸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며칠간 머물다가 속리산의 절로 들어가 수일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일 스님은 절에 들어간 뒤 그만 어머니를 깜빡 잊었는데, 용녀는 혹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늘 아들이 떠난 방향으로 이마에 손을 얹고 기다리다 돌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송화강 기슭에 망자석이 생기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망자석」의 모티브는 ‘아들의 출가와 어미의 기다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인의 형상을 닮은 돌을 증거물로 삼아, 흔히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가 전역에 널리 퍼져있다. 이러한 유형의 설화는 심지어 고문헌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런데 이 설화에서는 용녀가 하늘이 점지한 아들이 장성하여 출가하자, 그 아들을 기다리다 돌이 된다. 즉 이 설화는 망부석 설화의 변이형으로서 하늘이 정한 섭리를 따른다는 것이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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