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묘와 뇌음사」

한자 關帝廟와 雷音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장원준|동리좌상
모티프유형 마을의 재앙과 관제묘 및 뇌음사 건립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8년 10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정의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무송현(撫松縣)에 있는 관제묘(關帝廟), 뇌음사(雷音寺)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개설

「관제묘와 뇌음사」는 선인 동굴 근처의 관제묘를 지은 경위와 뇌음사 이름의 유래를 설명한 설화다.

「관제묘와 뇌음사」는 괴물 박쥐를 선인 동굴에 가둔 뒤 동리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으나 몇 년간의 홍수와 큰 가뭄으로 농사짓기가 어려워졌고, 선인 동굴 근처에 작은 암자를 지어 보살을 모신 후 천천히 재난이 사라졌다. 그 후 암자를 확장해 사찰을 짓자 마을의 재난이 사라졌고, 더 나아지기 위해 관제묘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끊이질 않자 벼락을 멈추기 위해 뇌음사란 절을 지었고, 그 후 벼락이 사라지고 마을이 태평하게 되었다는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10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백산시 무송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김철운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백두산 기슭 무송현성선인 동굴 안에 괴물 박쥐를 가둬 둔 뒤로 세상이 태평스러웠다. 사람들은 선인 동굴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관제묘를 지었고, 관제묘는 지금까지 보전되어 오고 있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 무송현성 근방이 농사가 잘되었다. 그러다가 몇 해째 비가 오기 시작하고 멈추지 않아 물이 불어나 농사를 망쳤다. 어느 해엔 비가 안 와 가뭄이 들어 땅이 메마르기도 하였다. 농부들은 하늘을 원망하였고 방책으로 강신제, 산신제, 기우제 등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 지내는 것 또한 농부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마을의 좌상이 제사 비용이 부담되니 보살을 청해다가 공양을 드리자고 했고, 선인 동굴 근처에 간소한 암자를 지은 뒤 절을 찾아가 영험하다는 보살을 모셔왔다. 간소하게 암자를 지어 큰 영험함은 못했지만, 농부들의 부담은 줄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작은 암자를 늘려 사찰을 지었는데 점차 마을에 화근이 없어지고 병을 앓던 아이들도 병 없이 커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또 장군을 모셔야 한다며 관제묘를 크게 지었다. 그런데 관제묘를 짓자 날벼락이 빈번했다. 맑은 날에도 관제묘를 향해 마른벼락이 날아왔다.

관제묘가 벼락에 맞을까 봐 사람들은 관제묘와 얼마 떨어진 산중턱에 절당을 지어 뇌음사라 이름을 지었다. 그 후 관제묘에 벼락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마을이 태평스럽게 되자 관운장을 비롯한 다섯 장수를 사당에 모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도록 했고, 세월이 흐른 뒤 학식이 깊은 무송현 현장인 장원준이 이 관제묘에다 주련(柱聯)까지 썼다.

모티프 분석

「관제묘와 뇌음사」의 모티브는 ‘마을의 재앙과 관제묘 및 뇌음사 건립’이다. 전통 시대에 한민족은 마을에 가뭄이 닥치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고, 홍수가 닥치면 기청제(祈淸祭)를 지냈다. 이 설화에서도, 마을에 가뭄이 들자 사람들이 서둘러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가뭄이 멎지 않자, 관제묘를 건립하여 비를 기원하고 있다. 관제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의 영을 모시는 사당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우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관제묘가 있기는 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즉 한인들이 새로운 땅에서 한민족의 전통적인 신앙관인 용신 신앙을 바탕으로 하면서 한족의 전통적인 신앙관인 관우 숭배 사상도 수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