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과 메밀산」

한자 메밀과 메밀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석구 노인|자식
모티프유형 메밀 농사와 부모 봉양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7년 10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안도현(安圖縣)에서 메밀산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개설

「메밀과 메밀산」은 이도백하(二道白河)와 마을 근처의 메밀산에 대한 지명 설화이다.

마을에 살던 석구 노인이 메밀밭에서 아이를 주워 자식으로 삼고 '메밀'이란 이름을 붙였다. 석구 노인과 메밀은 친 부자지간은 아니었으나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고 살았다. 석구 노인이 죽자 메밀은 석구 노인이 죽은 후에도 볼 수 있게 산소 주변 산을 깎아 메밀 알처럼 세모 모양으로 만들었고, 그 후 그곳을 메밀봉 혹은 메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10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박기혁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이도백하 근처 내두산(奶頭山)이란 마을 부근에 삼각형의 작은 산봉우리가 있다. 이 삼각형의 봉우리가 메밀 알 같다 하여 메밀봉 혹은 메밀산이라 전해진다. 석구 노인이 오랜 병으로 나을 가망이 없었고 석구 노인의 아들인 메밀은 매일 밭일이 끝난 후 석구 노인의 병시중에 정성을 쏟았다. 석구 노인의 나이는 반백을 많이 지났으나 아들은 열 살 조금 넘었다. 이는 석구 노인이 장가도 못 들고 메밀 농사를 짓다 어느 해 여름 메밀밭에서 울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 아들로 삼았기 때문이다. 석구 노인은 젖동냥 하며 어린애를 키우고 보답으로 메밀 쌀을 주었고 아들이 밥을 먹게 되자 메밀을 가루로 만들어 먹였다. 애가 크면서 석구 노인은 애를 키운 것이 메밀이라고 생각하여 이름을 '메밀'로 지었다.

석구 노인은 메밀이 커가며 혹 친자식이 아니라 친부모를 찾으러 떠날까 걱정하였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을을 떠나 백두산 깊은 곳에 있는 밀림으로 들어갔다. 석구 노인은 메밀을 정성껏 키웠고 메밀도 석구 노인에게 효를 다하였다.

이웃들은 화목한 석구 노인의 가족을 부러워했다. 메밀의 효성에 감동한 석구 노인은 메밀에게 친자식이 아니었으며 백두산에 살게 된 사연도 전하였다. 효심 깊은 메밀은 키워준 은혜가 낳아준 은혜보다 크다고 말했다.

고령이 된 석구 노인이 병석에서 일어날 수 없게되자 메밀은 병시중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석구 노인은 아들 메밀에게 메밀 쌀로 지은 여러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메밀은 메밀밥과 메밀묵을 만들어 드렸고 석구 노인이 그 후 메밀 쌀 한 줌을 가져오라 한 후 메밀 쌀 한 줌을 쥐고 두 눈을 감았다.

석구 노인이 죽은 후 메밀은 3년제를 마치고 난 후 아버지가 바라볼 수 있도록 산소 주변에 솟아난 산봉우리를 매일 깎고 다듬어 메밀 알처럼 세모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그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메밀과 메밀산」의 모티브는 ‘메밀 농사와 부모 봉양’이다. 한민족의 주식은 쌀이다. 그러나 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논농사가 여의치 않아 쌀 대신 여느 작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이 설화에서는 ‘메밀’이 주요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메밀로 자식을 키우고, 그것을 먹고 자란 자식은 또 메밀로 부모를 봉양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를 교차시킴으로써 살림살이의 곤궁함조차 잊게 하고 있다. 즉 이 설화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