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

한자 金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반석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왕|스님|좌수
모티프유형 금이 묻혀있는 금당 마을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1년 4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반석진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 반석진(磐石鎭)에서 ‘금당(金塘)’ 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개설

「금당」은 두만강 하류에 소재한 금당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유래담이며, 늪 형성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자연물 형성담이기도 하다.

한 왕이 두만강 하류에 있는 삼각산 아래 벌판에 금탑을 묻었다. 월명사의 한 스님이 그곳에 절을 건립하려 하였지만 건립할 수 없었고, 한 풍수가가 금탑이 묻혔다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이러한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금을 캐내어 부자가 되려고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기존에 있던 늪과 연결될 정도로 땅을 팠지만 금탑을 찾지는 못했다. 한 나이 많은 좌수가 마을을 이루어 금탑을 찾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마을이 형성되어 ‘금탑’ 또는 ‘금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91년 4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혼춘시 반석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최기환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두만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한 황후가 병에 걸렸다. 왕은 유명한 명의를 청해 진맥하고 점쟁이를 불러와 점을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후의 병을 고칠 수가 없었다. 왕은 대신들을 명산대찰에 보내어 산신과 토지신에게 사흘씩 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가서 제를 지내고 돌아온 대신 한 명이 월명사의 노승이 "두만강 동쪽에 있는 선산에 길이 났다"라고 하였음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두만강 동쪽의 선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리고 두만강 하류의 살기 좋은 곳에 가서 빛이 나는 세모난 금붙이를 묻고 오라고 하였다.

왕의 명령으로 다녀온 대신들은 그곳이 "아홉 개의 늪이 서로 이어져 있고, 아흔아홉 굽이를 돌며 두만강으로 흘러간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왕은 "한 굽이만 더 있었으면..." 하며 탄식하였다.

시간이 흘러 두만강 하류에 살기 좋은 곳이 있다는 소문이 궐 밖으로 퍼져 월명사의 한 스님이 주지 스님 몰래 그곳에 들어가 절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면 다음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스님이 산신제와 토신제를 지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절을 건립하지 못한 스님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풍수를 볼 수 있는 한 노인이 찾아와 그곳에 금탑이 묻혀있다고 이야기하고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삼각산 아래 벌판에 금탑이 묻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부자가 되어보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금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파낸 곳이 기존에 있던 늪과 이어지게 되었지만, 금탑은 없었다.

나이 많은 한 좌수가 이곳에 마을을 이루어 금을 찾고, 금을 찾으면 똑같이 나누자고 하였다. 그 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금탑’이라 부르다, 땅을 파내어 늪이 되었다고 하여 ‘금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금당」의 주요 모티프는 ‘금이 묻혀있는 금당 마을’이다. 어느 왕이 황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삼각산 아래에 금을 묻었는데, 그것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황후의 병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관점에서 왕이 금을 묻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 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두만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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