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啓明골의 세 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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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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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바우돌|천돌|만돌|마 대감 |
| 모티프유형 | 야명주를 찾아 부자가 된 삼 형제|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삼 형제|삼 형제의 억울함을 담은 닭 울음 소리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6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서 백두산 동쪽 무산에 있는 세 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설화.
「계명골의 세 무덤」은 백두산 동쪽 무산에 소재한 세 무덤의 유래를 설명하는 인공물 형성 유래담이며, 민요 형성의 유래를 설명하는 설화이기도 하다.
형편이 어려운 삼 형제가 야명주를 발견하여 부자가 된다. 그런데 이를 질투한 욕심 많은 마 대감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고, 급기야는 누군가 놓은 불 때문에 마을을 떠나 깊은 산골짜기에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 후 삼 형제의 무덤이 있는 골짜기에서는 고약한 부자와 법을 어긴 관가를 험담하는 닭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창평 마을에 '바우돌이, 천돌이, 만돌이'라 부르는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이들 삼 형제는 '마 대감'이라는 부자에게 진 빚을 갚느라 생활이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우애는 돈독했다. 마 대감은 한가위까지 모든 빚을 갚으라고 하였고, 삼 형제가 빚을 갚지 않으면 마 대감 집의 일꾼으로 들어가야 했다.
시간이 흘러 한가위가 되었다. 그러나 삼 형제는 빚을 모두 갚지를 못했다. 한가위 아침 삼 형제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며, 마대감 집의 일꾼으로 들어간다고 아뢰었다. 그러고는 남은 일을 하러 밭으로 갔다.
어느 날,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두만강 쪽에 서 있는 바위에서 야명주(夜明珠)를 찾아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지자 마 대감도 야명주를 찾기 위해 삼 형제가 야명주를 찾은 바위로 갔다. 그러나 야명주는 없었고, 화가 난 마 대감은 그 바위를 깨뜨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삼 형제가 도둑질을 했다고 관가에 알렸고, 고을의 원은 이들 삼 형제를 잡아들였다. 그러나 삼 형제가 훔쳤다는 단서가 없어서 다시 풀어주었다.
삼 형제가 집으로 돌아왔더니 누군가 불을 놓아 곡식 낟가리를 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이들 삼 형제는 마을을 떠나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살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묻힌 골짜기에서 늘 “고약한 부자야 / 덕 쌓거라 꼬끼오 / 법이 검은 관가야 꼬끼오 / 법 밝으라 꼬끼오 / 덕 쌓으라 꼬끼오 / 법 밝으라 꼬끼오”라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명골의 세 무덤」의 주요 모티프는 ‘야명주를 찾아 부자가 된 삼 형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삼 형제’, ‘삼 형제의 억울함을 담은 닭 울음소리’ 등이 결합되어 있다. 마음씨 착한 삼 형제는 생활이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야명주를 얻어 부자가 된다. 그러나 욕심 많은 마 대감과 법과 질서를 무시한 관가의 횡포로 억울하게 마을을 떠나고, 그러한 삼 형제의 억울함이 닭 울음소리로 표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