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암과 곡창」

한자 靈床岩과 穀倉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마을 주민|관가 양반|산신
모티프유형 욕심 많은 관가 양반을 징벌한 산신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4년 8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화룡시(和龍市)에 있는 ‘영상암(靈床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개설

「영상암과 곡창」은 두만강 상류 화룡에 있는 ‘영상암’의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며, 제장(祭場)의 확보와 욕심 많은 양반의 징벌을 내용으로 한다.

평화롭고 인심 좋던 마을에 관가 양반이 이사 온다. 관가 양반은 각종 세금을 내라고 하고, 형편이 어렵게 된 마을 사람들은 두만강 변에 있는 바위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가 끝나자, 두만강을 향해 서 있던 바위가 네모난 상처럼 갈라진다. 그 후에는 그곳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한편, 관가 양반네에는 천둥이 치더니 집이 잿더미가 되었고, 두만강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산신제를 지낸 바위를 ‘영상’이라 부른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8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용정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이일남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두만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에 기근이 들어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 몇몇이 형성한 곡창 마을이 있었다. 평화롭고 인심 좋던 마을에 어느 날 한 아들을 데리고 관가 양반이 이사 왔다. 관가 양반은 땅세, 인두세, 오곡세 등을 내놓으라고 했고, 관가의 세금도 점점 늘어만 갔다. 관가 양반이 온 후에는 재해가 들어 곡식이 잘되지 않았고, 살기 좋은 마을에서 점점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있는 방책을 강구했고, 두만강 변에 있는 바위에서 산신제를 지내기로 하였다. 이레 동안 제를 지냈더니, 두만강을 향해 솟아있던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네모난 상처럼 되었다. 그 후에는 그곳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한편, 관가 양반네 일가는 모여서 어떻게 하면 호화롭게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천둥이 치더니, 집을 잿더미로 만들고 두만강 물속으로 사라지게 하였다. 그 후 마을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산신제를 지낸 바위를 ‘영상’ 또는 ‘괴상’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해마나 마을이 풍년이 들어 마을을 ‘곡창’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영상암과 곡창」의 주요 모티프는 ‘욕심 많은 관가 양반을 징벌한 산신’이다. 광포 설화인 ‘장자못 설화’의 변이형으로도 볼 수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지낸 산신제의 응답 차원에서 산신의 징벌이 이루어진다. 설화를 통해서 산신제의 제장 형성 유래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두만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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