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相逢 터 由來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요령성 단동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이여송|이항복 |
| 모티프유형 | 임진왜란의 발발과 명나라의 원병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5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요령성 단동시 |
요령성(遼寧省) 단동시(丹東市)에서 ‘상봉 터’와 관련해 전해지는 설화.
「상봉 터 유래」는 ‘상봉 터’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의 원병장 이여송(李如松) 장군을 이항복(李恒福)이 영접한다는 내용이다.
압록강 하류 북쪽 기슭에 ‘상봉 터’라고 불리는 병영 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선조 25년[1592], 일본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선조는 평양(平壤)으로, 다시 의주(宜州)로 피신했다. 그리고 이정귀(李廷龜)를 명나라로 보내 원병을 요청했다. 명나라 황제는 이정귀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보고받고 이여송 장수에게 원병을 이끌고 조선으로 입성하라 명했다. 이 소식을 받은 선조는 이항복에게 압록강 너머에서 이여송 장수를 맞이하라 명했다. 이항복이 이여송을 처음 맞이한 곳이 바로 병영 터이다. 그리하여 병영 터를 달리 '상봉 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상봉 터 유래」의 모티프는 ‘임진왜란의 발발과 명나라의 원병’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예법을 받아들이면서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겼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명나라에서는 이여송 장수를 원병장으로 내세워 조선으로 입성시켰다. 조선에서는 이여송 장수를 예법에 맞게 극진히 맞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상봉 터 유래」에서 매우 급박했지만, 예를 다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