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統軍亭 由來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요령성 단동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도절사 |
| 모티프유형 | 봉화대와 장수의 군 통솔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6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요령성 단동시 |
요령성(遼寧省) 단동시(丹東市)에서 ‘통군정(統軍亭)’이라는 정자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통군정」은 ‘통군정’의 명칭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자 누정 비각 묘총 전설(樓亭碑閣墓塚傳說)이다. 조선 시대 세종 때, 평안도 도절사는 어명을 받고 곳곳에 봉화대를 설치한다.
이때 의주에서 발해 때 쌓아 올린 봉화대를 발견한다. 그리고 싸움이 날 때마다, 장수가 이 봉화대에 올라 군을 통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도절사는 이러한 일을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는다.
관서팔경(關西八景) 중 으뜸으로 흔히 ‘통군정’을 꼽는다. 조선 시대에 세종이 평안도 도절사에게 칙지를 내렸다. 내용인즉, 압록강을 건너는 외적을 차단하고, 또 후방으로 외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서 봉화대를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덧붙여 더욱 만전을 기하라고도 했다.
어명대로 도절사는 평안도 곳곳을 돌며 봉화대를 설치했다. 그러던 중 의주에서 산봉우리에 돌로 쌓아 올린 넓은 대를 발견했다. 의주 군수에게 이 용도를 물으니, 원래 발해 때 쌓은 봉화대인데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장수가 이곳에 올라 군사들을 통솔했다고 말했다.
도절사는 이러한 일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정자의 이름을 ‘누대에 걸쳐 군사를 통솔했다’라는 의미에서 ‘통군정’이라고 했다.
「통군정」의 모티프는 ‘봉화대와 장수의 군 통솔’이다. 「통군정」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발해 때 쌓아 올린 의주의 봉화대에서 누대에 걸쳐 장수가 군을 통솔했다는 사실을 통해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