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威化島 回軍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요령성 단동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실화 |
|---|---|
| 주요등장인물 | 우왕|최영|이성계 |
| 모티프유형 | 우왕의 요동 정벌 계획과 이성계의 회군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4월 9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요령성 단동시 |
요령성 단동시에서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의 연유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위화도 회군」은 ‘위화도 회군’의 원인을 설명하는 역사적 실화라고 할 수 있다. 요동 공격이 불가한 구체적인 이유 및 회군할 수밖에 없었던 이성계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압록강 가운데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는데, 그 섬 중에서도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화도’라는 섬이 있다.
고려 말, 우왕은 최영과 함께 이성계에게 5만 명의 군사를 내어주며 명나라의 요동 지역을 공격하라 명했다. 이에 이성계는 군사를 이끌고 위화도까지 오긴 했지만, 요동 지역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성계는 조정으로 장계를 보냈다. 내용은 “첫째, 군량미와 군사 규모 등에서 명과 대결할 만한 능력이 없는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싸움은 상책이 아니다. 둘째, 여름철을 전쟁 시기로 잡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여름에 전쟁을 벌이면 농사도 망치고 농민에게 원성을 살 것이다. 셋째, 거국적으로 국력을 다 소모한 5만 명의 전 병력을 원정시키면 그 틈을 타서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므로 전투하기 불편하고, 전염병으로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왕은 장계를 받아주지 않고 이성계에게 진격 명령을 재차 내렸다. 이에 부하 장수 조민수와 함께 회군을 결정하고 조선을 개국한다.
「위화도 회군」의 모티브는 ‘우왕의 요동 정벌 계획과 이성계의 회군’이다. 우왕은 요동 정벌을 위해 서경(西京)[평양]에 머물면서 5만여 군사를 징발하고 압록강에 부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최영을 팔도 도통사(八道都統使)로,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左軍都統使)로,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右軍都統使)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4가지 불가론을 왕께 올리며 회군을 청했다. 이를 흔히 ‘사불가론(四不可論)’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첫째,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할 수 없다. 둘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셋째,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다. 넷째,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은 역병을 앓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이성계의 사불가론이 주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서사적인 전개에 의한 설화라기보다, 위화도 회군이라는 실제 사건을 전언(傳言)하는 교술적인 전개에 의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