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敗王朝 山城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8형제|도적떼 |
| 모티프유형 | 도적떼의 산성 공격과 8형제의 전사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1년 8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서 ‘패왕조 산성(敗王朝山城)’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집안시의 패왕조 마을에는 고구려 때 쌓은 산성이 남아 있다. 이를 ‘패왕조 산성’이라고도 하고, ‘팔왕조 산성’이라고도 한다. 고구려 때, 여덟 명의 형제가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형제는 모두 무예가 출중했다.
어느 날, 도적 떼가 산성으로 와서 성문을 열 것을 요구했다. 형제들은 도적떼와 맞서 싸웠다. 도적 떼는 형제들의 무예가 출중함을 알고 도망갔다. 이후에는 한참동안 그러한 일이 없었다.
어느 해 꽃 피는 봄날, 맏이가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넷째와 아우들은 심심하여 봉화에 불을 붙여보기로 했다. 봉화가 타오르자, 인근 오룡산에서 진을 치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왔다. 그러자 넷째와 아우들은 시험 삼아 올린 것이라며 군사들을 돌려보냈다. 넷째와 아우들은 이 사실을 형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맏이가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 배가 많은 도적 떼가 산성으로 와서 성문을 열 것을 요구했다. 넷째와 아우들은 급히 봉화를 올렸다.
그러나 오룡산의 군사들은 이번에도 시험이겠거니 여겨 천천히 움직였다. 결국 넷째와 아우들은 도적떼에게 죽임을 당했다. 뒤늦게 도착한 맏이, 둘째, 셋째, 그리고 오룡산의 군사들은 사태의 위급함을 깨닫고 결전하여 성을 되찾았다.
그러나 여덟 명의 형제들은 모두 전사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성을 ‘팔왕조 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고구려가 망한 후에는 ‘패왕조 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패왕조 산성」의 모티프는 ‘도적 떼의 산성 공격과 8형제의 전사’이다. 고구려 시기, 무예가 뛰어난 여덟 명의 형제들이 산성을 지키다가, 넷째를 비롯한 그 아우들이 장난삼아 봉화를 지핀 탓에 도적 떼에게 산성이 함락된다.
여덟 명의 형제는 죽음을 불사하고 도적 떼로부터 산성을 탈환한다. 산성을 수복, 탈환하는 여덟 명의 형제들의 기개와 용맹성을 기리는 동시에 산성을 ‘팔왕조 산성’으로도 불러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