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구」

한자 大水溝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젊은이|황구렁이 신
모티프유형 샘물의 발견|황구렁이 신의 재앙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4년 9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정의

요령성(遼寧省) 단동시(丹東市) 관전만족자치현(寛甸滿族自治縣)에서 ‘대수구(大水溝)’ 마을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개설

「대수구」는 대수구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한 젊은이의 예기치 않은 실수는 황구렁이 신의 노여움을 산다. 이에 황구렁이 신이 홍수를 불러일으키자, 젊은이가 황구렁이 신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궁극에는 홍수로 인해 새로운 골짜기가 생겼고, ‘큰물 때문에 생긴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을 ‘대수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9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최일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포석하(蒲石河) 인근에 ‘대수구’라는 마을이 있다. 먼 옛날, 마을이 있던 자리는 허허벌판이었다. 벌판 남쪽에는 큰 샘이 있었는데, 누구도 샘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심마니가 산삼을 캐다가 목이 말라 샘을 찾았다. 그런데 독사가 나타나 발목을 물고 사라졌다. 심마니는 샘물을 마신 후 샘물에 발을 담갔다. 그랬더니 상처가 씻은 듯 나았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마을이 조성되었다.

사람들 중 손씨가 샘 옆에 가장 먼저 집을 짓고, 샘물로 청주와 감주를 만들어 팔았다. 청주와 감주는 맛이 좋았다. 일손도 필요해 여러 명의 젊은이도 두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샘에서 물을 긷는데 여느 때보다 물빛이 탁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늘 하던 대로 가마솥에 물을 붓고 끓였다.

얼마 후 가마솥에서 누런 황구렁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이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황구렁이를 샘에 다시 넣었다. 그날 밤, 황구렁이 신이 손씨에게 나타나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면서 마을에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때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마을은 온통 물에 잠길 판이었다. 이에 젊은이가 칼을 들고 샘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황구렁이 신이 나타나 젊은이를 잡아먹으려 했다. 젊은이는 온 힘을 다해 황구렁이 신과 맞섰다. 그리곤 황구렁이 신의 가슴에 칼을 꽂고 함께 샘으로 떨어졌다. 황구렁이 신이 죽자 비도 그쳤다.

마을 인근에는 홍수 때문에 새로운 골짜기가 생겼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큰물 때문에 생긴 골짜기’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대수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대수구」의 모티프는 ‘샘물의 발견’과 ‘황구렁이 신의 재앙’이다. 예부터 황구렁이는 재물을 늘려주는 업신(業神)으로 숭앙받아 왔다. 「대수구」에서도 황구렁이의 거처라고 할 수 있는 약샘의 물을 이용하여 손씨가 재물을 늘린다.

그러나 한 젊은이의 예기치 않은 실수로 황구렁이의 노여움을 사서 마을에는 대홍수가 일어난다. 황구렁이가 선신(善神)이자 악신(惡神)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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