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정」

한자 英豪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억돌|만돌|천돌|아버지
모티프유형 야만 무리의 마을 침입과 삼 형제의 방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월 8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정의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에서 ‘영호정(英豪亭)’이라는 정자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개설

「영호정」은 ‘영호정’의 건립 유래를 설명하는 누정 비각 묘총 전설(樓亭碑閣墓塚傳說)이다. 초산 마을의 삼 형제는 야만 무리의 노략질에 맞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을 쌓는다. 성의 동쪽 터에 정자를 쌓아 완공할 즈음에, 야만 무리가 성을 함락하고 마을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다. 삼 형제도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이미 고인이 된 삼 형제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돌화살을 날려 야만 무리를 소탕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삼 형제를 기리기 위해 ‘영호정’을 건립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9월 8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훈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리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수상 등]이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임수일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압록강 하류의 삼각산 기슭에 ‘초산’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고구려가 망하자, 이곳에 야만 무리가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았다. 마을 사람들은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을에는 삼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첫째 억돌이는 힘이 셌고, 둘째 만돌이는 칼을 잘 썼고, 셋째 천돌이는 활을 잘 쏘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만 무리가 다시 나타났다. 삼 형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맞서 싸웠다. 야만 무리의 두목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이후 삼 형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을 쌓기로 했다. 성은 나날이 완성되어 갔다. 이제 동쪽에 마련한 터에 정자만 지으면 되었다. 어느 날, 천돌이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아 올리라고 당부했다.

다음 날, 야만 무리가 수많은 인원을 대동하고 성으로 공격해 왔다. 삼 형제와 마을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었다. 이때 억돌이, 만돌이도 죽었다. 천돌이도 활을 맞고 쓰러졌다.

천돌이는 아버지가 꿈에서 이른 대로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돌화살이 날아들어 야만 무리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사실 삼 형제의 아버지는 ‘날장수’라고 불리던 조정의 장수로 억울하게 역모에 휘말려 죽음을 당했다.

삼 형제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삼 형제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성 동쪽 한 편에 정자를 세우고, 삼 형제를 기리기 위해 ‘영호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영웅호걸을 기리는 정자'라는 뜻이다.

모티프 분석

「영호정」의 모티프는 ‘야만 무리의 마을 침입과 삼 형제의 방어’이다. 고구려의 패망과 발해의 건국이라는, 즉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까지의 과도기는 그야말로 ‘야만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영호정」이 이러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당대 야만 무리의 약탈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건 삼 형제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절대 영웅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죽어서도 마을을 지켜낸 삼 형제의 아버지, 죽음을 불사하고 야만 무리와 맞선 삼 형제야말로 우리 이웃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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