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牛心洞 由來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억쇠 |
| 모티프유형 | 억쇠네의 이주와 정착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4년 9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에서 ‘우심동(牛心洞)’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우심동 유래」는 ‘우심동’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다. '억쇠'네가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까투리 알 무더기를 발견하고 한 끼를 채운다. 그리고 그곳에 터를 잡는다. 이어 30여 호가 모여들어 마을을 이룬다.
먼 옛날, 억쇠네 일가가 압록강 물길을 따라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억쇠네는 원래 백두산 수림 속의 한 마을에 살았는데, 전염병이 돌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한 곳에 당도하니, 폐가로 방치된 초가가 있었다. 억쇠네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억쇠는 불을 지피고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까투리가 앉았던 곳에 알 무더기가 있었다. 억쇠네는 그것으로 끼니를 채웠다. 그다음 날에도 까투리가 앉았던 곳에는 알 무더기가 있었다. 그리하여 억쇠네는 일단 이곳에 머물며 밭을 일구기로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예전 억쇠네와 같은 처지로 떠돌던 한 모녀가 이곳에 들렀다가 억쇠네의 권유로 함께 터를 잡고 살았다. 이후 30여 호가 들어서 마을이 되었다. 어느 날, 한 노승이 마을에 들렀다가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앞쪽에 소와 같은 형국으로 뻗어 있는 산 때문에 마을이 오래도록 평화로울 것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우심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심동 유래」의 모티프는 ‘억쇠네의 이주와 정착’이다. 전염병을 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억쇠네는 양지바른 곳에서 까투리 알 무더기를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한다.
비록 미물이라도, 제 새끼를 낳아 기를 곳을 직감으로 알아차린 까투리를 통해 그곳이 얼마나 양지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마을의 진산(鎭山)[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이 소의 형국임을 통해서도 그곳이 얼마나 양지인지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