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落花岩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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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최서방|불관이|황대감 |
| 모티프유형 | 황대감의 횡포|불관이의 저항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4년 9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서 벼랑 중턱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자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낙화암」은 강기슭의 벼랑 중턱에 새겨진 ‘낙화암’이라는 글자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이다. 불관이라는 처녀가 황 대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다.
만포시에서 압록강을 따라 가면 강기슭에 벼랑이 있는데, 그 벼랑 중턱에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 이 근방 동리에서 최 서방이 무남독녀 불관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최 서방이 병에 걸렸다. 불관이는 온갖 약초를 달이고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그러나 최 서방의 병은 낫지 않았다. 최 서방은 임종에 임해, 불관이가 제 딸이 아니라고 했다.
얘기인즉슨, 최 서방이 젊었을 적에 오첨지 댁에서 머슴으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오첨지 댁으로 큰년이라는 여자아이가 팔려 왔다. 최 서방과 큰년이는 서로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동정했다. 몇 년 후 최 서방이 다른 마을로 일을 보러간 사이, 오첨지는 큰년이를 기방에 팔아버렸다. 최 서방은 낙담했다.
그리고 몇 해 후 당나귀에 실려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아이의 품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어미가 큰년이라는고 적혀 있었다. 최서방은 아이를 친자식인 양 길렀다.
불관이는 아비를 잃었지만, 열심히 살아갔다. 그런데 마을의 황 대감이 불관이를 첩으로 맞으려 했다. 불관이가 거절하자, 황 대감은 하인을 시켜 불관이를 강제로 잡아 오라 했다. 하인들은 어쩔 수 없이 불관이를 잡아가야 했다. 이에 불관이는 하인들을 잠시 안정시키고 압록강 벼랑에 올라 몸을 던졌다. 이때부터 ‘꽃다운 불관이가 떨어진 바위’라는 뜻에서 ‘낙화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낙화암」의 모티프는 ‘황 대감의 횡포’와 ‘불관이의 저항’이다. 비록 천한 기생의 딸이지만, 원치 않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불관이는 벼랑 위에서 몸을 던진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불합리한 권위에 맞서 민초들이 대항하는 유형의 이야기들은 숱하게 전해지고 있다. 민중 의식(民衆意識)의 각성과 발로라는 측면에서 「낙화 벼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