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廣開土王碑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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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부여국 왕|유화|주몽 |
| 모티프유형 | 주몽의 신이한 탄생, 역경, 공업 성취|호태왕의 영토 확장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2년 4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서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송화강을 따라 수백 리를 내려가면 옛 부여국의 땅이 나타난다. 먼 옛날, 부여국의 왕은 후덕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어 늘 고민이었다.
어느 날, 왕의 꿈에 별 하나가 뜰로 떨어져 큰불이 났다. 왕은 대신을 시켜 용한 신선에게 해몽을 부탁하라 했다. 신선은 귀인을 만날 꿈이라는 것만 일러주었다. 얼마 후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물이 불어나 쉬고 있는데, 세 사내가 웬 여인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여인은 세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몸부림쳤다.
왕은 세 사내에게 영문을 물었다. 한 사내가 이르길, 이 여인은 용왕의 따님인데, 늘 세상에 관심을 두고 용궁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해서 용왕의 분부를 받고 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왕은 사내의 말이 맞느냐며 여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자신을 하백의 딸 유화라 소개하며, 용궁으로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왕은 세 사내에게 내가 보살필 것이니 용왕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하고, 유화를 데리고 궁궐로 왔다. 그리고 유화를 두 번째 왕비로 맞았다.
이듬해, 유화가 알을 낳았다. 왕은 흉한 일이라 여겨 알을 들판에 버렸다. 그러나 날짐승과 길짐승이 알을 품어주었다. 이 사실을 왕이 알고, 그 알을 다시 가져와 깨뜨리니 옥동자가 나왔다.
그런데 첫 번째 왕비가 내리 7명의 아들을 낳았다. 7명의 아들은 성장하면서 주몽을 미워했다. 이에 유화는 주몽이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주몽을 피신시켰다. 이때 용왕이 길을 내어주어 주몽이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 그리고 주몽의 20대 후손 호태왕이 이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광개토왕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