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

한자 廣開土王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부여국 왕|유화|주몽
모티프유형 주몽의 신이한 탄생, 역경, 공업 성취|호태왕의 영토 확장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2년 4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서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개설

「광개토왕비」는 ‘광개토왕비’의 건립 유래 및 비의 내용을 설명하는 누정 비각 묘총 전설(樓亭碑閣墓塚傳說)이다. 광개토왕비의 건립 유래를 설명하기 위해 주몽의 신이(神異)한 탄생, 역경, 공업 성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오히려 광개토왕비와 관련한 설화라기보다 주몽과 관련한 설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4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집안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김수길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송화강을 따라 수백 리를 내려가면 옛 부여국의 땅이 나타난다. 먼 옛날, 부여국의 왕은 후덕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어 늘 고민이었다.

어느 날, 왕의 꿈에 별 하나가 뜰로 떨어져 큰불이 났다. 왕은 대신을 시켜 용한 신선에게 해몽을 부탁하라 했다. 신선은 귀인을 만날 꿈이라는 것만 일러주었다. 얼마 후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물이 불어나 쉬고 있는데, 세 사내가 웬 여인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여인은 세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몸부림쳤다.

왕은 세 사내에게 영문을 물었다. 한 사내가 이르길, 이 여인은 용왕의 따님인데, 늘 세상에 관심을 두고 용궁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해서 용왕의 분부를 받고 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왕은 사내의 말이 맞느냐며 여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자신을 하백의 딸 유화라 소개하며, 용궁으로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왕은 세 사내에게 내가 보살필 것이니 용왕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하고, 유화를 데리고 궁궐로 왔다. 그리고 유화를 두 번째 왕비로 맞았다.

이듬해, 유화가 알을 낳았다. 왕은 흉한 일이라 여겨 알을 들판에 버렸다. 그러나 날짐승과 길짐승이 알을 품어주었다. 이 사실을 왕이 알고, 그 알을 다시 가져와 깨뜨리니 옥동자가 나왔다.

그런데 첫 번째 왕비가 내리 7명의 아들을 낳았다. 7명의 아들은 성장하면서 주몽을 미워했다. 이에 유화주몽이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주몽을 피신시켰다. 이때 용왕이 길을 내어주어 주몽이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주몽고구려를 건국했다. 그리고 주몽의 20대 후손 호태왕이 이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광개토왕비이다.

모티프 분석

「광개토왕비」의 모티프는 ‘주몽의 신이한 탄생, 역경, 공업 성취’라는 신화와 ‘호태왕의 영토 확장’이다. 호태왕은 너른 영역을 확보한 후 고구려의 건국과 기상을 만방에 고하기 위해 ‘광개토왕비’를 건립한다. 광개토왕비를 통해 주몽 신화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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