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落花 벼랑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옥녀|신관사또 |
| 모티프유형 | 신관사또의 폭정|옥녀의 저항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서 ‘낙화 벼랑’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독로강 너머, 압록강 중류 약간 못 미친 곳에 신비로운 벼랑바위가 있다. 어느 해, 이 근방의 고을에 신관 사또가 부임했다. 신관 사또는 폭정을 일삼았다. 어느 날, 신관 사또가 가마를 타고 고을을 돌다가 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농군을 보았다. 신관사또는 딸의 미모에 매료되어 농군에게 어떤 누명을 씌워서라도 딸을 농락하고자 마음먹었다.
이에 농군을 불러 딸을 첩으로 달라고 했다. 그러나 농군은 딸아이 이름은 옥녀인데 며칠 후 청돌이와 혼인을 약속했다며 거절했다. 이에 청돌이는 이튿날 옥녀와 함께 고을을 떠났다. 농군도 그렇게 하라고 청돌이에게 일렀다.
다음 날 신관 사또가 농군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딸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농군과 아내는 딸아이가 이미 떠났다고 했다. 신관 사또는 농군을 기둥에 묶고 매우 치라 명했다. 그렇게 농군은 반죽음이 된 채로 옥에 갇혔다가 며칠 만에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접한 옥녀와 청돌이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를 목격한 관원들이 청돌이를 두들겨 패고 옥녀를 잡아 가두었다. 그리고 이튿날 신관 사또의 생일잔치가 경치 좋은 벼랑 위에서 벌어졌다.
옥녀는 일부러 곱게 단장하고 생일잔치에 나가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신관 사또와 함께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듬해 옥녀가 떨어진 자리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이때부터 그 벼랑을 ‘낙화 벼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낙화 벼랑」의 모티프는 ‘신관 사또의 폭정’과 ‘옥녀의 저항’이다. 옥녀는 비록 미천한 농부의 딸이지만 신관 사또의 폭정에 맞서 그와 함께 투신하는 것으로써 저항한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불합리한 권위에 맞서 민초들이 대항하는 유형의 이야기들은 숱하게 전해지고 있다. 민중의식(民衆意識)의 각성과 발로라는 측면에서 「낙화 벼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