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산」

한자 惠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선비|포졸
모티프유형 문관의 무고함과 방면|논밭 경작과 마을 형성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5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정의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 에서 ‘혜산(惠山)’ 마을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개설

「혜산」은 ‘혜산’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어느 문관이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다가 그의 무고함을 알게 된 포졸에 의해 풀려난다. 문관은 백두산 인근 산야에서 부인과 함께 논밭을 일궈 생활한다. 매년 풍년이 듦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마을을 조성한다.

채록/수집 상황

1990월 5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장백조선족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김복설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먼 옛날, 압록강 남쪽 기슭을 따라 두 명의 포졸이 웬 선비를 압송해 가고 있었다. 해가 기울자, 포졸들이나 선비나 한껏 지쳐 바깥에서 잠을 청했다. 선비는 고을 관아의 문관이었는데, 당파 싸움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백두산 밀림 속으로 유배를 떠나는 중이었다.

그 날 선비의 꿈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포졸들을 물어뜯었다. 선비는 놀라 깨어 포졸들을 살폈다. 그런데 젊은 포졸이 신음하고 있었다. 몇 달을 거쳐 이곳까지 오면서 몸이 상할 데로 상한 탓이었다.

늙은 포졸은 선비를 풀어주며 물을 떠오라 했다. 선비는 내달려 물을 떠왔다. 그러나 젊은 포졸은 죽고 말았다. 늙은 포졸은 더 이상 강행군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인근에 초막을 짓고 선비와 함께 약초와 나물을 뜯어 연명하며 며칠을 묵었다.

그러는 사이 늙은 포졸은 선비가 무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늙은 포졸은 선비를 풀어주며, 관아에 가서는 “백두산에 못 미처 죽였다.”라고 고하겠다고 하고, 또 부인에게는 “조용히 이곳으로 가라.”고 이르겠다고 했다.

몇 달 뒤, 선비의 부인이 초막으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논과 밭을 일궜다. 땅은 비옥하여 매년 풍년이 들었다. 이 소문이 인근에 퍼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을이 조성되었는데,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은혜로운 산’이라는 뜻에서 ‘혜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혜산」의 모티프는 ‘문관의 무고함과 방면’과 ‘논밭 경작과 마을 형성’이다. 백두산 기슭, 불모지 땅을 개척한 사람들에게 ‘산이라는 존재’는 곧 ‘은혜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혜산」을 통해 백두산 기슭에서 어렵사리 삶을 살아가야 했던 개척민들의 소박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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