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惠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선비|포졸 |
| 모티프유형 | 문관의 무고함과 방면|논밭 경작과 마을 형성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5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 에서 ‘혜산(惠山)’ 마을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먼 옛날, 압록강 남쪽 기슭을 따라 두 명의 포졸이 웬 선비를 압송해 가고 있었다. 해가 기울자, 포졸들이나 선비나 한껏 지쳐 바깥에서 잠을 청했다. 선비는 고을 관아의 문관이었는데, 당파 싸움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백두산 밀림 속으로 유배를 떠나는 중이었다.
그 날 선비의 꿈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포졸들을 물어뜯었다. 선비는 놀라 깨어 포졸들을 살폈다. 그런데 젊은 포졸이 신음하고 있었다. 몇 달을 거쳐 이곳까지 오면서 몸이 상할 데로 상한 탓이었다.
늙은 포졸은 선비를 풀어주며 물을 떠오라 했다. 선비는 내달려 물을 떠왔다. 그러나 젊은 포졸은 죽고 말았다. 늙은 포졸은 더 이상 강행군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인근에 초막을 짓고 선비와 함께 약초와 나물을 뜯어 연명하며 며칠을 묵었다.
그러는 사이 늙은 포졸은 선비가 무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늙은 포졸은 선비를 풀어주며, 관아에 가서는 “백두산에 못 미처 죽였다.”라고 고하겠다고 하고, 또 부인에게는 “조용히 이곳으로 가라.”고 이르겠다고 했다.
몇 달 뒤, 선비의 부인이 초막으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논과 밭을 일궜다. 땅은 비옥하여 매년 풍년이 들었다. 이 소문이 인근에 퍼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을이 조성되었는데,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은혜로운 산’이라는 뜻에서 ‘혜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