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방리」

한자 書堂房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노인|길손
모티프유형 어느 학자에 의한 마을 사람들의 문맹 타파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8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정의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서 ‘서당방리(書堂房里)’ 마을과 관련해 전해지는 설화.

개설

「서당방리」는 ‘서당방리’ 마을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한 학자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는 어느 마을에 들러 서당을 열고, 마을 사람들에게 글공부를 시킨다. 그 마을을 ‘서당방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서당방리’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8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장백조선족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조선성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예부터 ‘삼천리벌’은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벌 동쪽 끝에는 ‘당리’라고 하는 아담한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마을로 한 길손이 들러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다. 때마침 밭일을 하고 있는 노인이 있어 어렵사리 청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노인은 저녁밥을 정성껏 지어 길손에게 대접했다.

저녁밥을 먹고 난 지 얼마 안 되자, 마을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인의 집은 마을에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청년들이 다 모이자 노인의 며느리가 편지 한 장을 들고 와 누구라도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길손이 편지를 읽었다.

편지의 내용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노인과 며느리는 당황했지만, 그 전에 받아놓았던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사돈네 집으로 향하며 길손에게 며칠만 집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길손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길손은 당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내다가 당파 싸움에 진절머리가 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서당을 열까 하고, 적당한 마을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상을 치르고 돌아온 노인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길손의 내력을 듣고 마을에 서당을 열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하여 마을에 서당이 열렸다. 이때부터 마을을 ‘서당방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서당방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서당방리」의 모티프는 ‘어느 학자에 의한 마을 사람들의 문맹 타파’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한낱 사치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요건이 되었다. 「서당방리」에서 문맹의 불편함, 그것으로 인한 글에 대한 욕구의 확대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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