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궁정」

한자 卦弓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어미|남매
모티프유형 어미와 누이의 비운|어미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정자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4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정의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서 ‘과궁정(卦弓亭)’이라는 정자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개설

「과궁정」은 ‘과궁정’이라는 정자와 관련한 것으로 이에 대한 유래는 누정 비각 묘총 전설(樓亭碑閣墓塚傳說)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전설은 비운을 맞이한 어미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정자에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활을 걸어놓았다는 데에서 과궁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과궁정에서 ‘과’는 원래 ‘괘(掛)’, 즉 ‘걸어놓다’는 것이 변모한 것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4월, 한정춘[1953년 길림성 혼춘시 출생,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 수상]이 장백조선족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이철억에게서 채록했다.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압록강 유역 전설집』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압록강 상류 남쪽 기슭에 ‘제령당’이라는 산봉우리가 있고, 그 정상에 ‘과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고구려 시기, 어느 해 봄에 한 여인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압록강 근처에 이르렀다. 여인의 남편은 올곧은 선비였는데 당파 싸움에 휘말려 갑산으로 유배를 당했다. 여인은 남편을 만나고자 아이들과 함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그러나 남편이 백두산으로 몸을 숨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하여 다시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몸과 마음이 지쳐 끝내 죽고 말았다.

어미를 잃은 아이들이었지만, 마지막 유언에 따라 백두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백두산 밀림 속에서 암자를 발견하고 하룻밤 묵었다. 암자의 스님은 아이들의 사정을 가엾이 여겨 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머물도록 하였다. 그리고 머무는 동안 학문과 무예를 전수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누이의 꿈에 어미가 나타나 몹시 추우니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다. 누이는 닷새를 기약하고 남동생을 남겨둔 채 어미의 무덤으로 향했다.

그러나 누이는 닷새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남동생이 어미의 무덤으로 가보니, 그 무덤이 산으로 변해있었다. 누이가 치마폭에 흙을 날라 무덤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이 그만 산처럼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누이는 산마루에서 숨을 거둔 뒤였다.

남동생은 어미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산꼭대기에 정자를 세우고 스님이 물려준 활을 걸어놓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 정자를 ‘활이 걸려 있는 정자’라는 뜻에서 ‘과궁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과궁정」의 모티프는 ‘어미와 누이의 비운’과 ‘어미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그런데 어미와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정자에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활을 걸어놓은 이유가 불명확하다. 다만 불법(佛法)의 힘으로 어미와 누이가 극락왕생하기를 지극히 바란다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압록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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