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牛子늪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우자 |
| 모티프유형 | 잉어의 조화와 인신공희(人身供犧) 요구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8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서 ‘우자늪’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설화.
「우자늪」은 ‘우자늪’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우자(牛子)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호랑이에게 당당히 맞설 정도로 용맹하다. 어느 해, 수백 년 묵은 늪의 잉어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이때 우자는 잉어와 당당히 맞선다. 그러나 우자는 잉어와 함께 늪으로 사라지고 만다.
백두산 서남쪽, 압록강 기슭을 따라 내려가면 평평한 언덕 위에 푸른빛이 감도는 우자늪이 있다. 먼 옛날, 이 곳 인근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심이 후했으며 형제지간처럼 사이좋게 살았다.
마을에는 활을 잘 쏘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와 망아지 한 마리를 물었다. 젊은이는 활을 쏘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풀쩍 뛰어올라 젊은이를 덮쳤다. 젊은이는 호랑이에 깔려 몸부림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황소가 달려와 두 뿔로 호랑이를 받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황소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젊은이를 우자(牛子)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 후 어찌된 영문인지 비가 끊이지 않았다. 마을 원로들은 늪의 수신이 장난을 치는 것이므로 제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물을 준비하여 늪에서 3일간 제를 올렸다. 그랬더니 비가 뚝 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 달 간 비가 오지 않았다. 이에 같은 방식으로 3일간 제를 올렸다. 그랬더니 소나기가 내리쳤다. 이듬해, 비가 오지 않자 같은 방식으로 3일간 제를 올렸는데, 늪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사람 제물을 바치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우자는 활을 메고 늪으로 향했다. 그러자 수백 년 묵은 잉어가 뛰어올랐다. 우자는 잉어를 향해 활을 쏘았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다. 우자는 칼을 빼들고 늪으로 뛰어 들었다. 그렇게 얼마간 뒤엉키더니 늪이 잠잠해졌다.
수백 년 묵은 잉어도 우자도 죽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 늪을 ‘우자늪’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매년 청명(淸明)을 기해 우자를 위해 제를 올렸다.
「우자늪」의 모티프는 ‘수백 년 묵은 잉어의 조화와 인신공희(人身供犧) 요구’이다. 신화 시대에는 용(龍)이 비와 바람을 몬다고 여겨, 특히 먼 바다를 나가는 뱃사람들은 용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곤 했다. 또 농부들도 용을 가뭄과 홍수를 부리는 존재로 여겨 집단으로 제를 지내곤 했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만연하면서부터 인간이 그러한 존재에 대항하게 되었는데, 「우자늪」에서는 그러한 존재를 수백 년 묵은 잉어로 상정하고 있으며, 우자라는 젊은이가 목숨을 바쳐 잉어를 처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