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떼몰이꾼과 龍王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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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백산시 임강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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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지선달|부자 |
| 모티프유형 | 어느 부자의 거짓|지선달이라는 경험 많은 떼꾼의 떼몰이와 용왕묘 제사의 단절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8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吉林省) 백산시(白山市) 임강시(臨江市)에서 ‘압록강의 용왕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화.
압록강 인근에 인색한 부자가 살았다. 그가 하루는 점쟁이를 찾아 점을 쳤다. 점쟁이는 부자에게, “오래도록 부를 누리며 장수하려면 장백산의 홍송(紅松)으로 절간을 짓고 불공을 드려야 합니다”라고 했다.
예부터 백두산의 홍송은 최고의 재목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래서 궁궐이나 절을 지을 때마다 백두산의 홍송을 베어 떼를 엮고 압록강에 띄워 운반했다. 그러나 압록강의 백룡이 심술 맞아 바람을 휘몰아 떼를 강물에 쳐놓곤 했다.
그래서 부자가 ‘후한 삯을 치고 홍송을 구한다’는 방을 붙였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이때 떼꾼으로 경험 많은 지선달이 일행을 데리고 나섰다. 지선달은 압록강 용왕묘에 먼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부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부자는 본인이 손수 제물을 마련하여 제를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지선달 일행이 떠났지만 부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선달 일행이 홍송을 베어 떼를 엮고 압록강을 건너자 백룡이 비바람을 몰고 파도를 일으켰다. 비록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지만, 지선달이 워낙 경험이 있던 터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여느 사람들도 용왕묘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압록강에 떼를 엮어 띄우기 시작했다. 결국 용왕묘는 퇴색해버렸다.
「떼몰이꾼과 룡왕묘」의 모티프는 ‘어느 부자의 거짓’과 ‘지선달이라는 경험 많은 떼꾼의 떼몰이와 용왕묘 제사의 단절’이다. 예부터 바다·강·호수 등지에 용이 거처하며 비바람을 몰아온다고 여겼다. 그래서 먼 바다를 나갈 때나, 뗏목을 엮고 나갈 때면 으레 용신(龍神)에게 뱃길의 안전을 기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사고가 만연해짐에 따라 용신에 대한 믿음이 퇴색해버렸는데, 「떼몰이꾼과 룡왕묘」에서도 그러한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