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촌[안도현]

한자 金化村[安圖縣]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조선족 마을
면적 6.68㎢
가구수 61가호
인구[남/여] 296명(한족11명)
개설 시기/일시 1983년
변천 시기/일시 1937년~1945년
변천 시기/일시 1945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1959년
변천 시기/일시 1983년
조선족 마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북위 북위 42°44′-43°07′ 동경 128°08′-128°28′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속한 조선족 마을.

개설

금화촌의 동쪽은 대정자촌(大頂子村), 서쪽은 대전자촌(大甸子村) 남쪽은 만보촌(萬寶村), 북쪽은 태평촌(太平村)과 인접하였다. 총 인구 296명 중 11명을 제외하고 모두 조선족이다. 벼, 옥수수, 곡물 농사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청년의 집, 곡식 가공 공장 등이 있다. 경작지 총 면적은 74㏊이며 그 중 수전은 36.4㏊이고 한전은 37.6㏊이다. 토양이 비옥하며 유기질 함량은 9.91%이다.

명칭 유래

금화촌은 조선어로 된 지명이며 1937년 강원도 금화군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금화촌이라고불렀다.

형성 및 변천

금화촌은 금화, 남금화(南金化) 두 촌락으로 이루어졌다. 1937년 강원도 금화군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로 마을이 이루어졌다. 1945년 안도현 만보구(萬寶區), 1958년 태평관리구(太平管理區), 1959년 금화대대를 설립하고 1983년에 금화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금화촌에 소속되어 있는 남금화 마을은 1960년에 금화촌의 첫 생산대가 만들어졌으며, "1대"라고 부른다.

자연환경

마을의 총 면적은 6.68㎢이며 고동하(古洞河) 하곡 평원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산 형태를 하고 있다. 무상일수는 110-130일, 성장기는 120~128일, 5월~9월 활동 누적 온도는 2365.0℃ 이며 강수량은 530㎜이다. 삼림 면적은 236㏊이고 삼림 복개율은 35%이다.

현황

1988년 금화촌에는 초등학교, 위생소, 곡식 가공 공장 각각 1개씩 있으며 가구마다 수도시설이 완비되었다. 개혁개방 이래 촌의 많은 젊은이들은 해외나 중국 동부의 경제가 발달한 지역으로 떠났으며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 이것이 마을과 지역 발전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1980년에서 1990년대에는 길림성에서 연변자치주의 외화벌이는 최고를 자랑하고 있지만 외화벌이를 한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발전한 청도, 위해, 상해 등지로 떠남으로서 지역발전이 많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마을의 땅이나 경작지 소유도 한족이 거의 차지하게 되면서 조선족 마을에는 조선족의 수가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 『안도현지명지(安图县地名志)』(延边人民出版社, 1989)
  • 『연변조선족자치주지(延边朝鲜族自治州志)』(延边朝鲜族自治州地方志编纂委员会, 1996)
  • 중국 행정 구획(http://www.xzqh.or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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