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回龍鳳村[琿春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조선족마을 |
|---|---|
| 가구수 | 100여 호 |
| 인구[남/여] | 140명 |
| 개설 시기/일시 | 1860년 |
| 변천 시기/일시 | 1908년 |
| 조선족 마을 | 훈춘시 경신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경신진에 속한 조선족 마을.
회룡봉촌은 1860년부터 조선의 북부 지역에 계속된 흉년으로 인해 생겨난 많은 이재민들이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형성된 것으로 지금까지 1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땅에 정착한 조선인들은 황무지였던 회룡봉 땅을 개척하고 처음으로 벼 농사를 지어 조선인이 사는 곳에 벼 농사가 있고 벼가 자라는 곳엔 조선인이 있다는 역사를 새로이 써놓았다.
회룡봉촌은 ‘항일촌’, ‘혁명촌’, ‘인재촌’으로 불린다. 회룡봉 항쟁의 역사는 190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벌등 방천에 50여㏊에 달하는 섬이 생겼는데 회룡봉 사람들은 그 땅을 욕심낸 한 관리를 3년 동안의 항쟁을 거쳐 몰아내고 개척권을 차지했다. 1913년 회룡봉촌에서는 이 땅을 팔아서 학교를 설립했는데 그때부터 회룡봉촌은 영혼을 가진 땅이 되었다. 회룡봉촌은 11명의 장군을 배출하고 29명의 항일 열사와 16명의 항일 투사 등을 배출한 곳으로 이는 모두 학교를 일찍 세운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회룡봉촌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한민족의 민속의례 등, 전통풍속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