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 여순 일러 감옥 구지 박물관

한자 大連 旅順 日俄 監獄 舊址 博物館
분야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역사 박물관
면적 2만6,000㎡
전화 86-411-86610675
홈페이지 www.lsprison.com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2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4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7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8월
현 소재지 대련시 여순구구 향양가 139호
정의

1900년대 러시아군의 야전 병원과 군대 병영으로 일본군이 감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하여 당시 상황을 전시한 박물관.

개설

1902년 러시아가 대련을 통치할 때 짓기 시작하였다.

건립 경위

1904년 2월 러일 전쟁 발발 전에는 85실만 짓고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후에 러시아 군대의 야전 병원과 군대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러일 전쟁 끝난 후 일본이 1907년 여순, 대련 지역을 점령하여,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러시아가 지은 건물을 바탕으로 275칸으로 증축하여 2,000명을 수감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하여 동북 지역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되었다. 담 높이는 4m, 붉은색 벽돌로 쌓은 담이 725m 되며, 담 안의 면적은 2.6만㎡에 달한다.

변천

1971년 7월 여순 감옥이 진열관으로서 일반에 개방되었다.

구성

대련 여순 일러 감옥 구지 박물관(旅順日俄監獄舊趾博物館)은 대련시 여순구 구 향양가 139호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감옥은 “大”자형 구조로써,.회색 벽돌로 쌓은 부분은 제정 러시아가 세운 것이고 붉은 벽돌로 쌓은 부분은 일본이 증축한 부분으로 총 253개의 감방이 있다. 각 층의 감방은 두 줄로 되어 있으며, 복도 바닥 중간 중간에는 감시는 물론 통풍구 및 투광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삼면의 건축물이 서로 만나는 부분에는 간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삼면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다.

그밖에 신체 검사실, 고문실, 교수형실과 15개의 공장이 있다. 이 감옥에서는 수많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이집트 등 국가의 백성들이 감금당하고 사형당하였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여순에 진주하였고 감옥을 폐쇄하였다.

활동 사항

여순 일러 감옥 구지에 수감된 죄수는 대부분이 정치범, 사상범과 경제범으로서 일본 인과 한국 인도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바로 안중근 의사와 단재신채호 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통감 이또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했다.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후 이곳에 투옥되었고, 이곳에서 사형당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당시 32세 밖에 안 되었으며, 사형 당시 한복을 입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사형 집행 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준생, 베네딕도]을 성직자로 키워 주기를 유언했다. 또한 2천만 형제, 자매들이 교육과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시키며, 성직자들은 민족 복음화에 노력하고 교유들에게 신앙 독려를 당부했다. “대한 독립 만세”, “동양 평화 만세”를 부른 후 순국하였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문필가, 역사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단재신채호 는 평생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살다간 ‘지조의 상징’ 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는 1919년 중국상해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의정원(議政院)[현 국회] 의원, 전원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등과의 갈등으로 임시정부를 떠나, 이후 언론 활동 및 각종 조직 활동에 종사하였다. 1925년경부터 아나키즘을 신봉하기 시작한 단재는 1927년 좌우 합작 신간회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28년 잡지 『탈환』을 발간하였다. 동지들과 외국환 입수 및 자금 조달차 대만으로 가던 중 기륭항(基隆港)에서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단재 는 옥고를 치르던 중 1936년 2월 21일 옥사했다. 현재 많은 한국 인이 여순 감옥을 찾고 있다.

여순 감옥은 일본 통치 시기 1,000여 명이 수감되어 있었으며, 많을 때에는 2,000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평균 15㎡ 되는 감옥에 7~8명 내지 10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감옥 안에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감옥 규칙을 써서 걸어놓았는데 그 내용은 “벽에 기대지 말 것, 마주 보지 말 것, 서로 이야기 하지 말 것, 밖을 내다 보지 말 것” 등이었다. 감옥 동남쪽에는 독립된 2층 건물의 사형실이 있는데 외관상으로는 일반 건물과 큰 차이가 없다. 1942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약 700여 명의 항일 투사를 처형했던 곳이다.

현황

현재 이 감옥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크며,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그 의미가 가장 곳이다. 1988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으로부터 여순 감옥 구지가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여순 감옥은 제국주의 침략 및 반 인류적 행위의 현장으로, 그 교육적, 사료적, 기념적 의의가 매우 높다.

제국주의 국가가 제3국에서 잇달아 세운 이 감옥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국을 침략한 반인류적 행위의 확실한 증거로서 그 잔인성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믈다.

참고문헌
  • 대련 여순구 (http://www.dllsk.gov.cn/kr2013/)
  • 요령 관광(http://www.lntour.gov.cn)
  • 다물 역사 (http://cafe.daum.net/damool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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