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룡산촌[상지시]

한자 二龍山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자연촌(조선족 단독행정촌)
면적 200ha
개설 시기/일시 1972년
변천 시기/일시 1994년
원보진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곳에 자리잡음
정의

흑룡강성 상지시 원보진의 조선족 마을..

개설

이룡산촌은 1972년에 흑룡강성 상지시 원보진에 형성된 마을로 단독 행정촌을 이루고 있다. 원보진 원보촌으로부터 단체로 이주하여 세워진 마을이다. 강 상류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밭과 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현재는 외국으로의 이주가 급증하여 생활상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이룡산촌은 1972년에 원보진 원보촌으로부터 조선족들이 단체로 이주하여 세워진 마을이다. 원보촌에는 1931년 9·18 사변 후부터 조선 이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1937년에 이르러 이미 70여세대가 모여들었다. 그 중 남상군은 연변 지역에 살면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지만 아내를 연변 지역에 두고 독신으로 원보촌으로 이주해온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남쪽 벌판에 벼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이곳의 조선족들은 고향으로 간다며 많은 사람들이 조선과 남만의 심양, 요양 등지로 떠나갔다. 그래서 1년 동안 40여 세대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2갑, 3갑 등 여러 곳에 몇 세대씩 떨어져 살았다. 1948년, 토지 개혁을 거쳐 조선인들도 모두 토지를 분배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1958년, 원보촌 조선족 농호들은 수원 문제를 고려하여 자신들이 경작하던 40여㏊ 수전과 강 상류인 약진대의 10여㏊의 수전 및 일부 밭을 바꾸었다. 그러다보니 원보촌의 농민들은 3㎞ 떨어진 경작지를 오가며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을 경작지 근처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1969년부터 마을 건설을 시작하여 1972년 원보촌에 살던 전체 조선족들은 약진대로 집단 이주하였다. 이때부터 단독 행정 관리 구역인 약진생산대대, 약진촌으로 명칭을 이어오다가 1994년에 이룡산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출국과 도시 진출을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등으로 진출하였는데 사람들이 외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어오면서 생활상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연환경

산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황

개혁개방 후 출국과 도시 진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등으로 진출하여 2007년까지 모두 71명이 한국 등으로의 출국과 중국 대도시로의 도시 진출을 하였고,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룡산촌[상지시 원보진]은 2003년 현재 136호, 32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94㏊의 경작지를 경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 류충걸외 2인, 『흑룡강성조선족 인구와 경제』(연변인민출판사, 2008)
  • 한득수, 『상지시 조선 민족사』(상지시 조선민족사 편집위원회, 민족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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