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北興村[尙志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자연촌 |
|---|---|
| 면적 | 8,756무 |
| 가구수 | 340세대 |
| 인구[남/여] | 1,300명 |
| 개설 시기/일시 | 1930년대 |
| 변천 시기/일시 | 1946년 |
| 촌 | 하동조선족향 북쪽에 위치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의 조선족 마을.
1930년 전후, 5~6세대 조선족들이 이사해 와 논농사를 지으며 북흥촌에 조선족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 5월, 하동 농장이 건립되면서 이곳도 농장 부지로 확정되어 1934년 4월 제2차 집단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이 지역에 살던 한족들이 일제에 의해 쫓겨나가고 조선족 마을이 되었다. 1934년 말에는 이곳에 97세대, 485명 인구가 몇 세대 혹은 10여 세대가 모여 20여 개 동네를 이루고 살게 되었다. 이런 동네들은 당시 18계, 19계, 20계로 불렸는데 민간에서는 툰이라고 불렸다. 각 계는 계장이 지명되어 일제의 영향을 받았으며 해방 전까지 줄곧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북흥촌은 잠시 무정부 상태에 처해 민심이 혼란했다. 외지로부터 이사해 오는 사람도 있었고 또 조선으로 간다며 떠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1946년 6월, 향 인민 정부가 건립되며 북흥촌은 18계, 19계, 20계를 통합하여 하나의 행정 관리 구역으로 정하였고 이를 토대로 촌 행정구역이 확정되었다.
1983년, 세대별 생산량 도급제가 실시된 후 기간농업기술과 농업기초건설이 발전하고 개혁개방 이후 여러 가지 농업 우대정책은 농민들의 생산열정을 높이는 촉진제가 되어 수확량이 대폭 증가하였다. 그 후 외국을 다녀온 사람의 수와 타지로 일을 하러 가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여 마을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급격히 좋아졌다.
평지 지역이고 관개시설을 하기 적절한 지역으로 벼 농사가 발달된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