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南興村[尙志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자연촌 |
|---|---|
| 면적 | 5,134무 |
| 가구수 | 413세대 |
| 인구[남/여] | 2,165명 |
| 개설 시기/일시 | 1921년 |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
| 촌 | 상지진의 동북쪽 3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며 하동조선족향의 제일 남쪽에 자리 잡음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의 조선족 마을.
하동조선족향의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 흥한 마을이 되기를 원하는 바램으로 “남흥”이라 마을 이름을 칭하였다.
1921년 이익태 일가의 정착 이후 1927년에 59세대의 조선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이들은 백가장 왕씨의 땅을 소작맡아 논농사를 지었다.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날따라 늘어나게 되어 동네 사람들은 돈 3,000원[RMB]을 모은 후 최문식을 내세워 지주인 곡만명을 찾아가 40여정보의 토지를 세맡게 되었지만 가을에 가서 곡씨는 계약을 어기고 3,000여근의 쌀을 소작료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주하진에서 정미간을 하는 한광수라는 조선인을 찾아가 지주와 교섭하여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광수는 국민당원으로 조선족에서 세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광수는 길림성 정부의 요씨 성을 가진 조선족을 찾아가 40여 정보의 토지는 남흥촌에 사는 사람들이 경작하게 되었다. 1933년, 하동 농장이 건립되며 이곳도 농장구역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집단 이민과 개별적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 15개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이루었다. 2003년에는 광성촌과 합병하여 현재 413세대, 1,565명의 인구가 8개 자연둔에 나뉘어 살고 있다.
평지에 위치하여 논농사를 하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413세대, 1,565명의 인구가 8개 자연둔에 나뉘어 살고 있다. 전 촌의 경작지는 논이 5,634무이고 약간의 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