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촌[상지시]

한자 窗坪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어지조선족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자연촌
면적 147㏊
가구수 143호
인구[남/여] 930여 명
개설 시기/일시 1934년
변천 시기/일시 2003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2년
야부리진에서 동쪽으로 16리 떨어진 남쪽에 자리잡음
정의

흑룡강성 상지시 어지향에 속한 조선족 마을.

개설

창평촌은 1934년에 흑룡강성 상지시 어지향에 속한 조선족 마을이다. 1937년에는 평안북도로부터 96세대가 이주해왔고, 1952년에는 노동력이 부족하여 이주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160세대의 큰 촌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중국 내 대도시나 해외로 이주하는 주민들의 수가 많아 30세대의 한족이 소작을 받아 농지를 경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조선의 고향지명인 평안북도 창평을 그대로 따서 마을이름을 창평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29년에 황씨 등 조선족 4세대가 지금의 창평촌과 6리쯤 떨어진 “알선지”란 곳에서 살다가 3년 만에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1934년에 이르러 전태선, 권유학, 김응민 등 자유이민 7세대가 이곳에 와서 황무지 2㏊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1937년 3월 28일, 평안북도로부터 96세대가 집단 이주해 왔다. 그들은 “중국북만주에는 땅이 많고 먹을 것도 흔하며 돈도 많이 벌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이주해왔는데, 와보니 황무지가 대부분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황무지를 밭과 논으로 개간하였다. 1952년 10여세대가 마을을 떠나가 노동력이 부족해져 새 농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수향과 아성 등지에서 15세대가 이주해와 160세대로 늘어났고 인구도 800명으로 증가하여 큰 촌으로 성장하였다. 창평촌에는 1989년부터 출국 바람이 불어 2007년까지 130여 명이 해외에 다녀왔고 약 30세대가 도시로 나가 그들이 경작하던 농경지를 지금은 모두 한족들이 경작하고 있다.

자연환경

야생 동물이 자주 출몰하고 황무지가 대부분이었던 산골 지역이다.

현황

2007년 기준으로 창평촌은 야부리진에서 동쪽으로 16리 떨어진 중장철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촌에는 조선족 113세대와 한족 30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112㏊의 논과 35㏊의 밭이 있다. 현재 중국 내의 대도시나 한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경작하던 농경지는 한족들이 경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문헌
  • 류충걸·김석주·김화, 『흑룡강성조선족 인구와 경제』(연변인민출판사, 2008)
  • 한득수, 『상지시 조선 민족사』(상지시 조선민족사 편집위원회, 민족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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