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連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중국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행정 구역 |
|---|---|
| 인구[남/여] | 669만명 |
중국요령성에 있는 지급시.
요령성요령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 동북지방의 경제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요동 반도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남만주 철도의 기점이다. 1897년에 러시아가 항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행정구획은 서강구, 중산구(中山區), 사하구구(沙河口區), 감정자구(甘井子區), 여순구구(旅顺口區), 금주구(金州區)의 6개의 시 직할구와 와방점시, 보란점시, 장하시의 3개의 현급시, 장해현의 1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 현재 인구는 669만명이고 35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은 만주족 다음으로 많은 소수민족으로 2010년 현재 23,268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련은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한적한 작은 어촌에 불과하였다. 1880년대 항구가 만들어지면서 작은 항구도시로 성장하였다. 본격적으로 도시로 성장한 것은 1898년 이곳에 근대적 항구와 조차지를 만들고 나서이다. 1904년 러·일 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고 이후 항만 확장과 철도부설로 동북 일대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다.
1976년 이후 현대적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84년 국무원에 의해 개방시로 지정받았고, 1985년에는 성 정부로부터 독립하여 경제개발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계획단열시(計劃單列市)로 지정받았다. 현재는 요령성의 제2도시가 되었고 동북아 지역 국제 운항과 물류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요동 반도를 가로 지르는 천산산맥의 맨 끝자락에 위치하여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항구 주변 일대에만 평지가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뒤섞인 특징을 지닌다. 전반적으로 습윤하며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고 여름 혹서도 그리 심하지 않다. 연평균 기온은 10.5℃이고 평균 강수량은 550~950㎜이다.
대련시는 현재 7개 시할구, 1개 현, 2개 현급시로 구분되어 있다. 또한 4개 국가급경제개발구도 조성되어 있다. 대련시는 동북 지방의 중요한 공업지역이며 무역항과 어업기지로도 중요성이 높은 도시이다. 조선, 기계, 화학공업, 섬유공업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남만주 철도의 기점이다.
2010년 통계 기준으로 인구는 669만명에 이른다. 한족 이외에 35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소수민족은 만주족이다. 2010년 현재 만주족은 약 30만에 육박하며 만주족 민족향 또는 진이 11개나 된다. 만주족 다음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이 조선족인데 2010년 통계 기준으로 23,268명에 이른다. 현재 조선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곳은 중산구(中山區), 사하구구(沙河口區), 감정자구(甘井子區), 금주구(金州區)로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각각 거주하고 있다.
대련 일대에 조선인들의 이주는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졌다. 이후 일제 시대 동안 조선인들의 이주는 급증하여 해방 직전에는 4만명을 웃돌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해방이 되면서 다수가 귀국하여 1946년에는 4천여명만 남았다. 일제 시대에 이곳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다른 동북 지역의 이주민과 달리 상업적 목적을 갖고 이주한 조선인들이었다. 해방 후 1980년대 중반까지 조선족의 숫자는 거의 늘지 않다가 개혁개방 이후 서서히 늘어나 2000년에 13,846명의 조선족들이 거주하였다. 이후부터는 더욱 빠르게 증가하여 실제 상주인구는 현재 7만명에 육박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재 대련시에는 1946년에 설립되어 유치원과정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 운영하는 대련조선족학교와 1952년에 설립된 전문대학 과정의 요녕성조선족사범학교가 있다. 또한 1953년에 건립된 대련시조선족문화예술관도 있다. 이외에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 대련시조선족노인협회 등의 사회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매년 6월에 개최되는 대련시조선족문화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