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半世紀를 이어 온 遼寧省 朝鮮族 文學의 搖籃, 審陽 朝鮮族 文學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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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요령성 심양시 |
| 시대 | 현대/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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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7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7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7년 11월 21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
요령성에서 우리 글로 글을 쓴다는 이들이 한번쯤 가입하고자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심양 조선족 문학회이다. 지금도 연말 총화 때면 새로운 회원들이 문학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심양 조선족 문학회의 문에 발을 들여놓는다. 요령성의 조선족 문학이라 하면 먼저 심양 조선족 문학회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1987년 문학을 애호하는 요령성 내의 열정적인 조선족 문인들에 의해 설립된 사단 법인 민간 문학 단체이다. 설립이 된 뒤부터 지금까지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세월과 시대를 초월하는 문인들의 노력과 단합을 바탕으로 요령성 지역 조선족 문단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대외 교류를 통해 전반 조선족 문단에서 입지를 튼튼히 다져가고 있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요령성 조선족 문인들을 조직하여 민족 문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문학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을 취지로 하고 있다. 현재 중국 한인[조선족] 사회가 날로 위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한인[조선족]의 전통과 문화를 전파하고 고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심양 지역, 더 나아가 요령성 지역의 한인[조선족] 교육 단체들과 힘을 합쳐 각종 글짓기 대회, 시낭송 행사, 이야기 대회 등을 조직해오고 있으며 요령성 지역 경제인들과 손을 잡아 문학회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경제인들은 문인을 후원하고 문인들은 우수한 경제인들을 지역 사회에 알리는 ‘심양 현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적으로 높은 호평을 받고 있으며 타 지역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현재 70여 명의 회원을 두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의 출범은 요령성 조선족 문학인들을 한데 묶어 발전시키고자 했던 뜻있는 단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단체들로는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 『요령 조선 문보』, 요령민족출판사 조선문 편역실 등 3개 단체이다. 이 3개 단체를 떠나서는 심양 조선족 문학회와 요령성 조선족 문학을 이야기 할 수 없다.
1981년 7월 심양에서 『군중 문예』라는 문학지가 출간되었다. 이 문학지는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에서 심양시 문화국의 허가를 받아 출간한 내부 간행물로서 초기에는 연창 재료를 위주로, 3기까지 월간으로 출간되고 그 다음부터는 정기 계간지로 발전하였다. 1987년 『군중 문예』 문학지는 『서탑』으로 개명하였다. 한인[조선족]들이 많이 집거하여 살고 있는 서탑은 이미 사람들의 인상 속에 코리아타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문학지 이름을 『서탑』으로 개명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서탑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조선족의 문학지를 연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명된 『서탑』 문학지는 지방 특색을 살리는 문학작품을 싣기 시작했다.
『서탑』 잡지는 출간 18년 동안 총 58기를 출간하고 1차례의 문필회를 조직했으며, ‘서탑 문학상’을 제정하고 2차례의 시상식을 가졌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전국적으로 간행물을 정돈하던 때 『서탑』 문학지도 정간되었다.
『서탑』 문학지는 해방 후 요령성에서 제일 처음으로 출간된 조선족 문학지로서 이를 통해 요령성 과외 작가들이 수십 명이나 배출되었다.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에서는 『서탑』[이전 『군중 문예』] 문학지에 실린 작자들이 수십 명이나 되는 것을 보고 요령성 조선족 문인들을 위한 단체를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987년 초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과 심양시 조선족 문학회 준비 소조의 이름으로 ‘심양시 조선족 문학회 설립에 관한 신청서’를 심양시 사회 과학 연합회에 올렸다. 상급의 허가를 받은 후 1987년 11월 21일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드디어 탄생을 알렸다.
요령성 한인[조선족] 작가들의 작품 원지로 『요령 조선 문보』 ‘압록강’ 문예란을 들지 않을 수 없다. 1979년 1월 『요령 조선 문보』에서는 “압록강” 문예란을 개설하였다. 목적은 요령성 내의 문학신인들을 배양하고 요령성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개설된 ‘압록강’ 문예란은 비단 요령성 한인[조선족] 작가들의 원지뿐만 아니라 동북 3성 한인[조선족] 문단 작가들의 원지이기도 했다. 1987년에 『요령 조선 문보』에서는 작가들의 창작 열의를 북돋우기 위해 ‘압록강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첫 시상식은 박성군 소설가의 후원금 1,000원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 기업가 김성수[LG 전자 회사]의 후원으로 시상식은 9차례나 진행되었다. 이 문학상 활동은 요령성 나아가 중국 동북 3성 작가들, 특히 젊은 문학도들에게 희망과 활기를 주었다. 요령성 조선족 문단의 중견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김군, 강재희, 최태렬 등 많은 요령성의 문학인들이 모두 ‘압록강’의 물에서 성장한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3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압록강’ 문예란은 변함없이 요령성 지역 나아가 동북 3성 한인[조선족] 문학인들의 작품원지가 되고 있다. 2010년부터 『요령 조선 문보』에서는 길경갑 기업가의 후원으로 ‘기원컵 압록강 문학상’을 제정하고 지금껏 줄곧 이어오고 있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가 출범하기 전 요령성에는 『서탑』 문학지외에 『갈매기』라는 우리 글로 된 종합 공개 간행물이 있었다. 이 간행물은 1982년에 창간된 간행물로서 요령민족출판사 조선문 편역실에서 꾸린 간행물이었다. 원래 명칭은 『새마을』이었으나 1986년에 『갈매기』로 개명하였다. 드넓은 바다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처럼 요령성 작가들의 활약을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간행물을 꾸린 목적 역시 요령성의 작가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원지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창간된 후 8년간 요령성 한인[조선족] 작가들의 작품 발표 원지로 되었던 『갈매기』는 1990년 상급의 지시에 의해 정간되었다. 정간되기 전까지 8년 사이 『갈매기』는 문필회 등을 조직하여 중국 조선족 문단의 저명한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을 초청하여 창작 경험담을 듣게 함으로써 요령성 한인[조선족] 작가들의 창작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1987년에 출범한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자체의 작품집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요령성에 『요령 조선 문보』에서 꾸리는 “압록강” 문학원지가 있고 요령민족출판사에서 잠시 꾸렸던 『갈매기』[전칭 『새마을』] 문학 잡지가 있었지만, 요령성 조선족 문인들의 작품을 발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타 지역에 『연변 문학』, 『장백산』, 『도라지』 등 문학지들이 있었지만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요령성의 문인들에게는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 『요동 문학』의 창간은 요령성 조선족 문인들의 오랜 숙망이었다.
『요동 문학』의 창간은 심양 조선족 문학회 7기 회장으로 부임한 고 박성군 회장의 노고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99년 11월 26일 한국 예총 춘천 지부의 요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고 박성군 회장은 한국삼창그룹이두철 회장을 만나 요령성 조선족 문학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요동 문학』 출간의 경제적 후원을 부탁하였다. 문학에 대한 박성군 회장의 열성에 감복된 한국삼창 그룹이두철 회장은 흔쾌히 응낙하고 매달 한화로 후원금 30만원을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렇게 해서 2001년 『요동 문학』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요동 문학』이라는 이름은 당시 요령민족출판사에서 편집으로 사업하던 시인 박화 선생의 건의로 지어졌다.
『요동 문학』은 창간부터 9기까지 한국삼창 그룹이두철 회장의 후원으로 출간되었으나 10기부터는 심양에서 활동하는 한인[조선족] 기업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매년 2기씩 총 22기를 출간되었다.
『요동 문학』에는 각 장르별로 회원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 심양 조선족 문학회와 문학 교류를 하는 내외 문학 단체 회원들의 작품도 실려 있다. 근래에는 미래 작가들을 배양하는 취지에서 ‘문학 소년’ 란을 설치해서 요령성 지역의 중·소학교 학생들의 작품도 싣고 있다.
2005년 심양시 조선족 기업가 협회의 후원으로 『요동 문학』 ‘심기협 문학상’을 처음으로 진행하였으나 1회에 그치고 말았다. 2011년 요령성 영구시에 있는 기업가이자 문학인이며 심양 조선족 문학회 부회장으로 있는 정용호 선생의 후원으로 『요동 문학』 ‘호룡컵 문학상’과 『요동문학』 ‘호룡컵 꼬마 작가상’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요동 문학』의 창간은 작품 원지가 적은 요령성의 한인[조선족] 작가들에게 자기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요령성의 조선족 문학과 작가들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출범한 이후 연변 작가 협회 요령성 지구 창작 위원회의 지도를 받고 있다. 해마다 연변 작가 협회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대표를 파견하며 『연변 문학』, 『장백산』, 『도라지』 등의 문학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연변, 길림, 흑룡강, 북경, 연해 지구의 조선족 문학 단체들과 활발한 문학 교류를 진행하고 있으며 학계의 권위자, 문학인들을 초청해 문학 세미나, 문학 심포 지엄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경 삼지 마을 문학회와는 서로 왕래하면서 작품을 교류하기도 하였다.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국내의 문학 단체들과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는 동시에 국외의 문학 단체들과도 자매 결연을 맺고 문화 교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2년 부터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차례로 한국 문협 춘천지부, 한국남한강 문학회, 한국울산 수필 동인회, 한국 문협 태백지부, 김유정 문학촌 등과 자매 결연을 맺고 문학교류를 진행하였다. 이 가운데 한국울산 수필 동인회, 한국 문협 춘천지부와는 10여 년간 지속적인 문학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한국 문협 춘천지부와는 해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문학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근래 들어 심양 조선족 문학회는 한국성남 문화원, 미국의 ‘나의 꿈’ 국제 재단 등과 해마다 한 번씩 문화 교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성남 문화원과는 해마다 심양 지역 중·소학생들의 백일장과 한·중 문학인들의 시 낭송 모임을 하고 있다. 미국의 “나의 꿈” 국제 재단과는 해마다 한 번씩 요령성 지역 중소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의 꿈 말하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심양시 조선족 문학회는 1987년 출범한 후 해마다 필회를 진행해왔다. 상급의 경비조달이 없는 상황에서 순수 민간 차원에서 심양시 조선족 문학회를 운영해나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회의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요령성 각 지역의 조선족 촌과 민속촌, 그리고 요령성 지역 풍경구,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진행된 심양시조선족문학회 필회는 조선족 문학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요령성 지역 한인[조선족] 유지들과 기업인들의 대대적인 지지와 관심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필회는 문학인들만의 마음의 마당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령성 각 지역에 살고 있는 문학회 회원들은 필회를 통해 서로의 친목을 다졌고, 문학 창작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에 대해 서로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였다. 문학인들에게 필회는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삶의 활력소였고, 창작 소재의 원천이기도 했다.
2008년 신빈향 수하자 강남촌에서 진행된 필회는 사람들의 인상 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 필회에서는 장춘에서 찾아온 문학인들과 일본에서 찾아온 문학인들의 문학창작담을 나누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구려 옛 유적을 찾아보며 산을 오른 회원들의 열정이 빛났던 모임이었다. 필회가 끝난 후 많은 회원들이 『요동 문학』사이트에 글을 발표하여 필회의 감회를 적었다. 그 외에도 필회에 쓰려고 사다놓은 개가 달아난 이야기라든가 시골 사람들의 살림집에서 기거하며 그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한 일들, 밤늦도록 즐겼던 모닥불 야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심심산골에서 나누었던 문학인들만의 낭만과 유머는 문학인들의 창작 소재로도 활용될 법하며,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