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김치와 영채를 즐겨 먹는 동북3성 지역의 음식 문화

한자 김치와 영채를 즐겨 먹는 東北三省 地域의 飮食 文化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상강
조선족 마을 길림성 길림시 용담구 아리다촌
정의

중국 동북 3성 한인 마을에서는 11월부터 시작되는 겨울 동절기를 보내기 위하여 저장 식품을 만든다. 오래전 김장을 통해 김치를 만들고 이를 저장해서 겨울을 보냈던 한인들은 과거 전해왔던 전통을 이어 김장을 통해 김치를 담그고 있다. 더불어, 중국 동북 3성의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영채를 활용한 김치 문화가 더해져서 한국과는 또 다른 김치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상강이 되면 김장을 준비하다

겨울이 일찍 시작되는 길림성에서는 상강[霜降: 한로와 입동 사이에 위치하며 음력 9월에 드는 24절기 중 하나로서 서리가 내리는 뜻]이 오면 김장을 준비한다. 지구 온난화로 배추 생산 시기가 변하면서 한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12월 중순이 넘어서 김장을 행하기도 하지만, 길림성에서는 아무리 따뜻해 졌다고 하여도 상강을 넘겨서 김장을 하지 않는다. 김치냉장고가 보편적이지 않은 이곳에서는 김장한 김치를 집 앞 마당 지하 저장 창고 또는 움집에 보관한다. 상강 전에 담근 김치는 따뜻한 날씨로 쉽게 삭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할 수 없다.

한인들이 김장을 하는 상강은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중순경에 해당된다. 한국보다는 약 1달에서 2달 정도 일찍 김장이 시작되며, 이 시기가 되면 길림성의 한인 마을 부녀자들은 김장 준비로 분주한 한 때를 보낸다. 김장시기 길림성의 한인 마을에서는 차가 기울어질 정도로 배추를 한가득 싣고 달리는 트럭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량으로 재배한 배추들은 트럭에 가득 실려 중국의 대도시로 판매된다. 2010년 장춘을 비롯하여 연변, 하얼빈 등 대도시에서 소비한 김치의 양은 약 6천 톤에서 1천만 톤에 육박한다.

도시와 농촌에 따라서 김치를 담그는 방법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 아파트 또는 마당이 없는 주택에 거주하는 도시민들의 경우 50포기 이상 대량으로 김장하지 않는다. ‘김치움[김치 저장 창고]’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김장김치를 저장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겉절이와 같은 즉석 김치를 수시로 담궈 먹거나 또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포장된 김치를 사서 먹는다. 또는 농촌에 계신 부모님이 김치를 담궈 보내주기 한다. 2010년 글쓴이가 약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아라디 마을 역시 김장 배추를 도시 자녀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 비교적 넉넉하게 김장하는 모습과 함께 잘 포장된 김장김치를 인편으로 보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농촌에서는 안주인이 텃밭에서 기른 배추를 다듬는 것으로 김장이 시작된다.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함과 함께 김치에 대한 소비가 아직 높아 김장은 비교적 많은 양을 한다. 심각한 이농 및 한국 이주현상으로 대부분의 가정이 독거 또는 부부 가족인 한인 마을에서 김장은 혼자보다 함께 이루어진다. 마음이 맞는 사람, 친척, 이웃 등 3~4명이 짝을 이루어 김장을 하는데, 보통 나이가 비슷하고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김장을 한다.

김장에 필요한 채소는 대부분 텃밭에서 생산한다. 한인 가옥은 1960년대 이후 집체[集體: 집단] 활동으로 지어진 것으로 비슷한 구조와 너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족(漢族)의 집과 구분되는 것 중 하나는 한인의 가옥은 텃밭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땅에 집을 넓힌 것이 아니라 앞마당과 뒷마당을 만들어 각각의 공간에 텃밭을 꾸미고, 긴 겨울 음식을 저장할 저장 창고를 만들었다. 김장에 필요한 배추와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 젓갈 종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야채 종류는 모두 이 텃밭에서 생산되는 것을 사용한다.

김치의 맛과 안주인의 고향

19세기 후반부터 이주한 한인들은 어느 장소에 정착을 하던 된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김치를 담그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김치는 긴 겨울동안 집안의 중요한 저장 음식이자 겨우내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구황 음식이기도 하였다. 김칫독이 김치움 한켠에 두세 독씩 있으면 그것으로도 배가 불렀던 시절도 있었다.

김치를 담그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던 것은 김치를 담그는 맛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이어지거나 또는 여전히 이주 1세대들이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의 김치 맛을 보면 안주인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김치에는 안주인의 맛이 깊숙이 배여 있다. 예를 들어 함경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변과 흑룡강성 동부 지역에서는 양념 재료로 소금, 마늘, 고춧가루, 생강, 무 등의 필수 재료를 중심으로 가정에 따라 부추, 향채씨, 사과배 등을 사용한다. 김치에 젓갈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간혹 동태 살을 으깨거나 발라서 양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연변 사람들이 젓갈이나 액젓이란 단어를 모를 정도로 젓갈 사용이 제한적이었으며, 일부 가정에서는 소고기국을 끓여 그 국물을 양념장에 사용하였다. 반면 경상도 출신이 많은 길림 지역에서는 기본 재료에 새우젓을 사용하였다. 과거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강가에 붕어와 버들치 등 작은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절구에 으깨 김치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김치를 담그기 전 먼저 김치움을 정리한다. 상강이 지나 본격적 겨울이 되기 전 김치움을 비롯한 지하 저장 창고에는 겨울 식량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넣어둔다. 이와 함께 김장 전 김칫독이 차지할 여유로운 공간도 비워둔다. 정리가 끝나면, 텃밭에서 캔 배추를 손질한다. 중국 동북 3성에서 자란 배추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크기가 크고, 겉 표면 잎이 억세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고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손질한 배추는 반을 가르고 세척을 한 뒤 소금을 뿌려둔다. 취향에 따라서 소금의 양을 조절한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들어갈 속을 만든다. 속재료는 무, 쪽파, 고춧가루, 마늘과 함께 집안에 따라 액젓을 사용하거나 다른 재료를 넣는다. 사실 김치의 맛과 안주인의 고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마지막 액젓의 사용 여부와 함께 들어가는 부재료에 있다. 경상도에서 이주한 한인의 경우 까나리액젓을 사용하며, 서울 또는 경기도의 경우 새우젓을 많이 사용하며, 젓갈을 아예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안동과 충청도에서 온 경우라면 생선을 넣기도 한다.

길림성의 대표적인 경상도 마을 알라디촌에서는 김장철이 되면 마을 내 위치한 마트에 한국산 까나리액젓이 빠지지 않고 비치된다. 과거 액젓이 없던 시절에는 강에서 잡은 붕어를 절여 액젓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고, 또 비싼 새우젓을 구매하기도 하였으며, 이도 힘든 경우에는 젓갈 없이 김치를 담갔다. 속재료가 완성되면 절인 배추와 함께 버무린다. 버무린 배추는 김칫독에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 돌로 누른 뒤 김치움에 넣는다.

최고의 저장 식품 무말랭이

김장에 앞서 10월 한인 가옥 앞마당에서는 무말랭이를 말리는 전경과 무말랭이를 만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무말랭이에 사용하는 무는 일명 ‘보리무’라고 불린다. 한국에서 총각무라는 품종과 비슷한 형태이나 크기는 훨씬 크다. 초복이 지나 배추가 자란 후 보리밭에 심는 무라고 하여 보리무라 불린다.

“보리밭에 늦게 심잖소. 배추 이마 큰 다음에 초복에 무 심지. 배추 큰 다음에 총각무... 총국마 갔다가 보리무라 그래. 아까 흰무 줬자네! 그게 보리밭무시 한가지인데 일찍이 심으면 커”

보리무는 깨끗하게 손질 한 뒤 무청을 자른 뒤 준비한다. 무 껍질은 벗겨내지 않는데 이는 더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영양분도 높기 때문이다. 손질한 무는 얇게 편을 썬 뒤 채를 쓴다. 채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맛이 떨어진다고 하여 채칼은 양이 많을 때를 제외하고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자른 무청은 햇볕에 잘 말려 시래기로 만든 뒤 겨울 동안 먹기 위하여 저장 창고에 넣어 둔다.

채를 쓴 무는 채반에 넓게 펴서 마당에 잘 말린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한인 가옥에서는 3~4일 밖에 내 놓으면 무는 충분히 마른다. 무말랭이를 말릴 때 날씨를 잘 가늠해야 한다. 무는 빠른 시간 안에 말려야 변색이 안 되고 단맛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건조하고 비가 적으며 햇볕이 좋은 9월 하순과 10월까지가 무말랭이를 만들기 가장 적절한 날씨임에 따라 이때 무말랭이를 가장 많이 만든다. 마른 무채는 바로 무말랭이 무침을 해서 먹지 않는다. 저장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먹을 만큼 꺼내서 반찬으로 만든다. 무말랭이 무침은 김치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한데 고춧가루와 마늘, 간장, 물엿이 들어가고 기호에 따라 액젓을 넣기도 한다.

영채 김치, 산갓 김치

길림성 지역 한인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김치 중 하나는 영채 김치이다. 한인들 사이에서는 ‘영채 무침’, ‘영갈채 김치’라고도 불린다.

영채는 북한에서도 함경도 이북 지역, 중국 동북 3성 주변 등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재배된다. 가을 배추 심을 때 심어 늦서리가 올 때 캔다. 알콤한[알싸한 맛]이 특징으로 저장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까지 먹는 봄나물로 알려져 있다.

영채를 함경도에서는 산갓이라고도 불렀기에 조선시대 음식서에 나오는 산갓과 동일한 것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둘 다 갓의 일종이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엄밀히 다른 것이다. 한반도 산야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던 산갓에 비해 함경도에서만 자라는 영채는 척박한 환경 탓에 향과 매운맛이 훨씬 더 강하다.

영채는 함경도, 양강도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것으로 한인 이주민과 함께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연변과 흑룡강성, 길림성으로 퍼져나갔다. 함경도 영채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 독특한 맛을 내기에 다른 곳에서 재배가 어렵기도 하고 재배한다고 해도 본래의 맛과 똑같지 않다.

갓 특유의 톡 쏘는 성분이 따듯한 온도에서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어 이 성질을 활용해 담근 김치이다. 따라서 가을철에 수확하여 따뜻한 방에서 잘 띄우는 기술이 관건이다. 영채가 잘 띄워지면 노랗게 색깔이 변하는데 이때 소금에 절인다. 영채 자체의 맵고 독특한 향을 즐기기 위해 양념을 적게 넣어야 제 맛이 난다.

영채와 오인되고 있는 전통시대에 고급김치로 소비했던 산갓김치는 영채와 생김새부터 다르다. 하지만 갓의 일종으로 성질이 같아 만드는 방법이 유사하다. 17세기 경북지역 음식서인『음식디미방』 ‘산갓김치’ 담그는 법에는 “산갓을 다듬어 찬물에 씻고, 더운 물에 헹궈 작은 단지에 넣는다.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붓고, 구들이 매우 뜨거우면 (단지를) 옷가지로 싸서 익히고, 뜨겁지 않거든 솥에 중탕하여 익혀라. 너무 더워서 산갓을 데워도 좋지 못하고, 덜 더워 익지 않아도 좋지 못하다. 찬물에만 씻고 더운 물에 헹구지 않으면 맛이 쓰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눈이 녹을 때쯤인 이른 봄,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깊은 산속에서 캘 수 있었던 야생 산갓은 선물이나 접대용으로 쓰였던 귀한 김치였다.

입맛과 건강을 함께 잡는 영채 김치

한인들 사이에서는 영채 자체가 배 속의 기름도 제거해주고, 상처가 나서 염증이 생기면 영채를 쪼아서 붙여준다고 한다. 또한 씨앗 자체가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전해지기도 한다. 영채의 효능에 대한 부분은 널리 알려져 중국 전역에서도 비싸고 귀한 김치로 알려져 있지만, 그 수확량이 적어 사계절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이다. 이는 영채 자체가 중국에서도 북쪽 지방 그리고 제한된 기간에만 재배되기 때문이다.

수확한 영채는 보편적으로 두 가지 요리법으로 담글 수 있다. 먼저 영채를 좀 오랫동안 먹기 위한 방법이다. 영채를 먼저 끓는 물에 넣고 익힌다. 익힌 영채는 다시 그릇에 담고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검은 봉지를 씌워 덮어둔다. 2~3일 정도 덮어두면 검은 봉지 안으로 수증기가 끼게 되고 영채가 더 익게 된다. 이때 어떤 것은 노랗게 되기도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 노란 것을 더 좋아할 때가 있다. 이렇게 푹 삭힌 영채는 다시 깨끗하게 씻고 물기를 짜서 놓아둔다.

영채 안에 넣은 양념은 고춧가루, 다시다, 후추 가루 등을 넣고 만들고 이를 영채에 넣고 버무린다. 이후 독에다 넣어 두었다가 3~4일 뒤 익힌 뒤 먹게 된다. 영채김치는 다른 포기 김치에 비하여 짧은 기간 동안 먹는 음식이다. 알싸한 맛이 입안에 맴돌게 하기 위해서는 너무 오랫동안 익혀서 먹지 말아야 한다.

이외 영채를 간단하게 무쳐서 먹는 방법이 있다. 영채와 대파를 몇 번 헹궈 물기를 대충 빼고 가는 소금을 뿌린다. 몇 시간 또는 2~3일 동안 절이는데, 영채의 식감에 따라서 개인이 결정한다. 절인 영채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 적당한 양을 빼서 먹는다.

절인 영채를 버무리기 전 먼저 영채를 절인 물을 따라서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미원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충분히 양념장을 저은 후에 그것을 먹을 양만큼의 절인 영채에 넣어서 함께 살살 버무린다. 절인 영채에 양념을 직접적으로 넣게 되면 영채가 흩어질 수 있기 때문에 꼭 따로 따로 만들어서 한꺼번에 버무려야 한다. 이렇게 만든 영채김치는 김장김치와 별도로 밥상에 올라가며 알싸한 맛과 함께 입안의 감도는 향기로 인하여 그 맛에 한번 익숙해진 사람은 늘 찾게 되는 별미가 된다.

한인뿐만 아니라 한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영채는 한인 가옥에서 재배를 통하여 경제적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중국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서성진 성남촌에서는 집 앞 마당에서 영채 농사를 지어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2013년 10월 기사가 있다. 성남촌은 일찍이 영채 농사를 통해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개별 가옥의 마당에서 재배하는 영채 판매 수입으로 8~9만 위완화[한국 돈 약 1,400만원 ~ 1,600만원] 수입을 올리고 있다. 부부 또는 독거노인이 주로 거주하는 한인 마을에서 집 앞마당을 활용한 영채의 판매 수입은 노인들의 주요 소득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이것이 좋은 점은 대전에 하기보다도 우리도 나이가 있고 하니까 집에서 두 내외간이 조금씩 하는데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자식들한테도 부담주지 않고 능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성남촌 촌민 이영수, 연변 TV 방속국(2013년 10월 17일 재인용)]

각 가정에서 텃밭에서 기른 영채는 특별히 약을 뿌리지도 않고 비닐하우스로 재배하고 있으며, 한 달간 재배한 영채 100~200근을 시장에 내다팔아 수입 1만 위엔[한국 돈 약 180만원]을 올리고 있어 가정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잊지 못하는 맛 영채

한인 음식 문화가 대부분 모국에서 기인하여 한국의 음식 문화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한인들은 한국 생활에서 음식 문화에 따른 어려움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비해서 적으며, 때때로 한국 식자재가 더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인들 사이에서 유독 그 맛을 잊지 못하고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고 하는 음식이 바로 영채 김치이다. 많은 한인들이 영채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하여 중국에서 씨를 구입하고 한국에 뿌려서 재배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중국에서 수입된 영채 나물을 통해 김치를 담궜다는 이야기를 한인들의 인터넷 대화장 블로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식료품 가게에 영채가 산나물로 판매되거나 또는 영채 김치로 완성품이 판매되기도 한다.

수선화: 남조선에 파는게 없는줄 알았는데 가리봉동 장물열콩두 팝데다

이예원: 나도 영채김치 좋아하는데 지금은 한국에도 영채파는데 잇슴다.

대림에 가두 많슴다

수선화: 대림몇번출구 나가믐 됨까??? 가리봉시장두 이번에 첨 알았음다

이예원: 12번 출구 나가면 중국슈퍼 많슴다. 완전 중국동넴다.

울산오빠: 가산디지털단지쪽에도 한인[조선족]이 만잖아요. 알싸한 영채김치...

한인 지역 정보 사이트(http://japan.123123.net/)

「2012년 지방 자치 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2012년 1월 1일 기준)에 의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한인[조선족] 수는 570,158명[전체 외국인 주민수의 40.4%]에 이른다. 2010년 진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제6차 인구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한인의 수는 총 1,830,929명으로 비교한다면 중국 내 한인 인구 약 30%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구수를 반영하듯 한국에서도 영채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전라남도 광양시에는 영채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개설되어 운영 중이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는 북한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새터민이지만, 중국에서 약 8년 동안 생활한 경험과 고향 함경도에서 즐겨 먹었던 영채의 맛을 잊지 못하고 직접 재배해서 판매하고 있다. 재배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채에 대한 인기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새터민뿐만 아니라 한인[조선족]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이와 함께 국내 인터넷 쇼핑에서는 G마켓에서 영채 씨앗을 판매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속 백과 대사전』(국립 민속 박물관, 2010)
  • 『중국, 경상도 마을을 가다』(경상북도, 2010)
  • 박채린, 『조선시대 김치의 탄생』(민속원, 2013)
  • 최민호,「고집과 전통-중국 조선족 음식 문화의 변천과 특징」(『한국학 연구』31, 인하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2013)
  • 「뜨락 영채 농사로 수입 톡톡」(『연변 TV 방송국』, 2013. 10. 17.)
  • 조선족 지역 정보 사이트(http://japan.123123.net)
  • 묘향산 홈페이지(http://yckimchi.kr)
  • 디지털 안동 문화 대전(http://andong.grandculture.net)
  • SOH 희망 지성(http://www.soundofhope.co.kr)
  • 인터뷰(권복순, 여, 65세, 아리디 마을 주민, 201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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