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흑룡강성 목단강 지구 조선족 사회의 중심,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

한자 黑龍江省 牡丹江地區 朝鮮族社會의 中心, 牡丹江市朝鮮民族藝術館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흑룡강성  
시대 현대/현대
목단강시 지구 조선족의 문화 중심,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

강 이름이 도시 이름인 목단강시는 하얼빈에 이어 흑룡강성 제2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근 3만 명의 한인[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흑룡강성 내 최대의 한인[조선족] 집거지이자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도시이기도 하다.

목단강시 서장안구조선 민족 풍정 거리[조선 민족 민속 거리], 곧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중국 속의 한국을 연상할 만큼 한글 간판이 많이 보인다. 소수 민족 한인[조선족]의 민족 문화 활동을 조직하고 민족 문화 인재를 양성하면서 민족 예술 보호와 전승에 힘쓰고 있는 중국 동북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족 문화관 중의 하나인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도 바로 이곳에 있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연 20여 차례의 대형 군중 문화 활동, 30여 차례의 농촌, 군부대와 기업, 공장, 광산 등을 찾는 문화 보급 사업[문화 하향 사업], 10여 차례의 민족 문화 예술 인재 양성 행사를 진행하는 외에, 목단강시 소수 민족 음력설 문예 야회, 목단강시 조선족 새노래 창작 평의회 모임, 목단강시 청소년 독창, 독무, 독주 콩쿠르 및 유치원 문예 콩쿠르를 조직하고 있다.

이들 행사는 예술관의 정규 행사가 되었는데, 예술관이 신청한 '조선족 환갑례'는 중국 국가급 무형 문화재로 등록된 상태이다. 2011년 10월 18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 위원회 제6차 전원 회의가 발표한 「문화 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사회주의 문화 대발전과 대번영을 추진할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정」이 나온 이후,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문화 사업뿐만 아니라 문화 산업을 준비하는 노력과 함께 한국 사회와의 협력도 심화시키고 있다.

6·25 전쟁 중에 설립된 목단강 조선족 문화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단 2인의 직원으로 목단강 조선족 문화소로 시작, 1953년 5월에 공식으로 설립된 목단강 조선족 문화관은 초창기 건물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도 북한[조선]에서 온 전쟁 고아들을 돌보았다. 중국 정부가 고아들을 중국에 데려가 기르면서 글도 가르치기로 결정하자 언어가 통할 수 있는 목단강 조선족 문화관에 기탁한 것이다. 문화관 직원들은 한 핏줄 조선의 고아들을 살뜰하게 보살펴주고 글을 가르쳤다. 전쟁이 끝나 1956년 전후 복구 건설이 시작되자 조선의 고아들은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문화관은 조선의 고아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잘 수행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관은 1955년부터 해마다 조선족 문예 경연 대회를 조직했다. 1958년 문화관의 직원이 8인으로 늘어났으나 독립 공간이 없는 것은 여전해 교회당이나 학교 교장 사택을 사용하고 악기라고는 발풍금 한 대밖에 없었으나 문화관의 기초를 세워갔다.

‘조선족 문화관’에서 ‘조선 민족 예술관’으로

목단강 조선족 문화관은 다른 문화관과 함께 문화 대혁명 시기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흑룡강성 한인[조선족]은 담이 크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흑룡강 신문』이 중국 동북의 민족 언론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함께, 1988년 목단강시 조선족 문화관이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으로 명칭이 공식 변경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족 문화관[혹은 문화 예술관, 군중 예술관) 가운데 공식 명칭인 ‘조선족’이 아니라 ‘조선 민족’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목단강시하얼빈시뿐이다. 그 만큼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격이 올라간 것이다. 1998년에는 목단강시 조선족 가무단을 합병하고 또 정부의 자금 지원 아래 독립 건물을 갖게 된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당지부는 2011년 1월 현재 연속 11년간 시문화국 당위로부터 선진당지부로, 2003년과 2006년 2차에 걸쳐 목단강시 선진 당지부로 평의되었고 예술관은 2005년 흑룡강성 정부로부터 흑룡강성 민족 단결 진보 모범 집체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건축 면적 2,500㎡에 달하는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 내에는 300여 ㎡의 다기능 활동실과 110㎡의 무용 연습실 및 10개의 각종 문화 활동실이 있는데, 현재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관원이 총 32명으로 그중 2명은 국가 1급[최고급]이고 4명은 2급이다. 전문적인 예술인이 총 관원의 85%에 달하고 있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이후 변화를 끌어안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목단강 시내 3만 내외의 한인[조선족]뿐만 아니라 목단강시 지역 내 11만에 이르는 중소 도시 및 한인[조선족] 농촌 마을 한인[조선족]의 문화 예술 활동을 지도해왔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목단강지역 농촌의 현황도 점차 학교가 줄어들고 민족 문화가 소실되어가는 경향을 드러냈다. 첫째, 민족 문화를 이어나갈 대가 끊어지고 있다. 예술관에서 30년 이상 지속해온 ˂목단강시 조선족 유치원 문예 경연 대회˃에 2006년에는 단지 6개 유치원만이 참여함으로 결국 한족을 포함한 행사로 변경해야 했다.

둘째, 한인[조선족] 농촌 문화 활동들에 생기가 없어졌다. 과거 목단강 산하에는 6개 조선족향에 모두 문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민족향진 문화소는 유명무실해졌고 농촌의 문화 활동실도 모두 노년 활동실로 대체되었다.

셋째, 민족 문화의 순수성이 희박해졌다. 민속춤 놀이, 사물 놀이, 윷놀이 등은 점차 사라진 반면 밤낮 없이 마작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농촌 청년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족 문화가 현대 오락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한인[조선족]들이 꾸리는 무도장, 노래방들이 농촌 문화 소비와 오락 내용의 주요한 취향이 되었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한인[조선족] 문화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먼저, 민족 문화 예술 인재의 배양 체제를 갖추었다. 연변 예술 학원에 예술 인재 배양 기지를 세워 정기적으로 젊은 관원들을 보내 수업을 듣게 하고, 매년 조선족 중학교에서 예술 특장생들을 뽑아서 연변 예술 학교에 보냈다. 또 매년 12월 예술 관원들의 전공을 심사하여 관원들의 소질을 향상시키고, 아마추어 예술 관련 인재들을 배양하고 있다. 매년 ˂조선족 새노래, 새가사 창작 평의회˃ 개최, ˂민족 전통 무용 배양반˃과 ˂조선족 민속 타악기 학습반˃ 등을 꾸려 한인[조선족] 중소학생들을 훈련시켰고 각 민족학교 음악교원 및 각 민족촌과 노인 협회의 예술인들을 양성하였다. 다음으로 예술관의 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 소수 민족 군중 문화의 새로운 수요를 채워나갔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오늘날 사회 문화 오락 장소가 시장화, 경영화, 사영화 하면서 노인, 미성년자, 농민, 도시의 퇴직 노동자 등의 문화 향수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예술관의 공익성 문화 서비스 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진행했다.

목단강시 조선족 노인 협회와 함께 “목단강시 조선족 노인 대학”을 세우고 매주 금요일 오후 예술관 6층 다용도 홀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시사 정치, 노인 문화, 혼인 가정, 건강 지식, 음악 오락 등으로 구성된 수업은 한인[조선족] 노인들의 호평을 받아 매 학기의 노인 수강생이 200여 인에 달하고 있다.

한인[조선족] 사회의 인구가 줄어들고 학교가 통폐합되고 사회가 노령화하는 상황에서 예술관은, 노인 문화 활동과 소년 아동 문화 활동이라는 2개 ‘특출’과 농촌과 농민의 문화에 대한 서비스라는 1개 ‘기억’에 주목한 것이다.

또한 예술관은 문화 브랜드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민족 예술관이 군중 문화 사업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예술 정품(精品) 전략을 실시, 민족적 특색과 지방 특색이 강한 군중 문화 활동을 창작해나갔다. 전통 문화 활동으로 정월 보름의 윷놀이와 8월 15일의 시민절 문화 활동을 주재하면서 목단강 지역의 인문 환경을 활용하여 발전가능성이 있고 군중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우수한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특색 있는 문화 활동 브랜드를 만들어간 것이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 조선 민족 민속 거리에 민족 문화 광장을 만들다

목단강시에는 근 3만 명의 한인[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80%이상이 서장안구 서삼조로에서 10조로 사이에 살면서 조선 민족 풍정 거리[조선 민족 민속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 민족 상점, 조선족 식당, 조선족 중학교, 조선족 소학교, 조선족 출판사, 조선족 도서관, 조선 민족 예술관 및 조선족 개인 경영 업체 110여 개가 모두 서장안가에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조선 민족 민속 거리는 사실상 코리아타운인 셈인데,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문화 브랜드화는 2004년 시정부의 지원으로 서장안가에 건설된 3,500㎡의 민족 문화 광장을 통해 먼저 이루어졌다. 이어서 예술관은 한인[조선족] 사회에서 20여 만 원을 모집하여 민족 문화 광장에 민족 문화 광장 무대를 세웠는데, 이로써 광장을 이용한 경축 활동이 개최되고 공연이나 지역 사회(社區) 문화 예술절 활동, 기업 공연 활동 및 밤에 열리는 “여름 광장무” 활동 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매일 밤 광장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400여 명이나 달하였고 매년 광장 문화 활동을 20여 차례 하는데 관중들이 8만여 명이 모였다. 덧붙여 예술관은 민족 문화 광장 브랜드에 이어 매년 설날에 1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조선족] 군중들로 조직된 “민속 공연대”가 출연하는 “봄맞이 양걸 대회”를 통해 민속 공연 브랜드를 만들었으며, 매년 새해, 설날 기간에는 민족 특색이 있는 “설맞이 전시 소수 민족 설날 야회”를 개최하여 대형 야외 브랜드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5회를 개최한 “봄맞이 양걸 대회”는 목단강시 소수 민족 군중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왔다. 2011년 8월 31일 제3회 개막 행사를 치른 목단강시 한인[조선족]의 최대 민속 행사인 경박호 민속 문화 축제와 2008년 8월 27일 북경 올림픽의 성공적인 폐막을 경축하고 조선 민족 예술을 고양하기 위해 개최된 제2회 전국 조선 민속 타악기 초청 경기 또한 민족 문화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이처럼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코리아타운의 명물로 등장한 조선 민족 광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부 시책에 부응한 한인[조선족] 군중을 위한 대규모 공익 사업을 시행해왔다. 뿐만 아니라 대외 문화 교류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예술관은 한국의 부산대학교 민족 미학 연구소와 자매 결연을 맺고 탈춤 표현, 타악기 훈련, 놀이 문화 학술 심포지엄 등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한국 한민족 언어 문화 진흥회와 장기적인 합작 관계를 맺고 공동으로 ‘중한 청소년 우리말 웅변 콩쿠르’, ‘목단강 경박호 민속 예술절’, ‘조선족 로년 문예 공연’, ‘전국 조선족 타악기 초청 경기’ 등의 민족 행사를 조직, 118틀에 해당하는 민속 타악기를 기증받아 한인[조선족] 농촌과 민족단위에 널리 보급하기도 하였다.

관광 문화 자원을 개발하여 민족 경제 발전을 촉진한 것도 예술관이 기울인 노력이다. 영안시의 폭포촌은 관광지인 경박호(鏡泊湖) 폭포와 가까운 한인[조선족] 마을이다. 관광 문화 자원이 좋은 폭포촌에서 한국 민간 예술 공연단의 공연을 도입하여 민속촌 관광절 공연 등 형식으로 민속촌을 문화로 포장했는데, 이로써 민속촌 관광 문화의 새로운 품위를 제고시키면서 민속촌 경제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이다.

한인[조선족] 인구의 감소에 따른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역 내 한족과 소수 민족을 끌어들이고 관내 한인[조선족] 기업인의 투자유치를 통해 문화 산업의 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목단당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활동에서 우리는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희망을 읽었다.

무엇보다도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심양의 서탑 거리를 제외하고 중국 동북지역의 대중 도시 가운데 가장 발전 가능성이 큰 조선 민속 거리[코리아타운]의 중심에, 그것도 같은 건물에 흑룡강성 유일의 한인[조선족] 도서관까지 함께 하고 있다. 여기에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문화 체제 개혁 심화 결정에 따른 중국 사회의 대응과 관련, 문화사업의 새 출구 모색에도 적극적이다.

‘문화 체제 개혁 심화 결정’에 따른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의 변화 노력

2011년 10월 중국 정부의 ‘문화 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사회주의 문화 대발전과 대번영을 추진할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정’[이하 ‘문화 체제 개혁 심화 결정’으로 표기] 이후 중국 동북 조선족 문화관의 동향 가운데 두드러진 분야가 문화 사업 부문이다. ‘문화 체제 개혁 심화 결정’의 다섯 번째 대항목이 바로 “비영리적인 문화 사업을 발전시키고 인민의 기본적인 문화권익을 보장한다”로서 세부 항목의 하나가 “도시와 농촌의 문화 일체화에 대한 발전을 가속화시킨다”에 있었던 것이다.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은 ‘문화 체제 개혁 심화 결정’ 정책이 발표된 이후, 변화에 적극 응해 문화 사업의 새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먼저, 직원들의 사상 전환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가가 대중의 문화 자질을 제고하기 위해 박물관, 기념관, 예술관, 도서관에 무료 개방 지시를 내리자 목단강시 조선족 예술관도 공공 문화 시설장소를 무료 개방하고 기본 공공 문화 항목 무료 봉사를 시작했다. 국가에서 해당 자금보조가 따른 대신 개인의 수익성업무도 불허되고 문화 기관에 대한 무료개방이 시행되자 적잖은 직원들의 불만이 잇따랐다. 이에 예술관은 여러 차례 동원대회를 열고 무료개방의 필요성과 문화인으로서의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예술관은 혁신으로 심미 피로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매체 기술이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심미 피로가 쌓이고 문화 예술에 대한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게다가 민족 예 술 창작에서 새로운 형식이 적고 상투적인 수단을 쓰는 경우가 흔하게 존재하는 있는 실정이다.

이에 예술관은 혁신을 앞세워 변화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나가고 있다. 민족춤 창작의 경우 조선, 한국, 연변의 예술 종목들을 수집한 후 단순한 옮겨오기를 피하고 재창작해 목단강 특색으로 만들어 나갔다. 칼춤의 경우 전문가들은 조선, 연변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속에서 다른 것이 들어있다고 평가해줄 정도가 되었다. 주봉남 관장은 "학생을 받고 강습반을 꾸리는 직원들이 의견이 대단했다"면서 "문화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것을 도출하기 위해 많이 보고 많이 사고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업무 지도 방침이다. 현재는 그러지 못하면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주관장은 민족 기관과 관련해 "제논에 자란 풀을 뽑아야 한다"고 개괄했다. 예술관도 민족 문화 기관답게 활약하는 것이 타인의 존중을 받는 정확한 길이라고 했는데, 민족 간부가 민족일에 그런대로 대처해버리면 남의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집거 지구인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와 달리, 산재 지구 조선족 문화관의 활동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한국과의 문화 예술 교류이다. 흑룡강성은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이 영산 줄다리기 보존회를 초청하여 한민족의 문화 예술 교류 활동을 개최한 점이 눈에 띄었다.

2012년 8월 18~20일, 목단강시 조선 민족 예술관이 주관한 조선족 제4기 경박호 민속 문화 축제 행사가 목단강 조선족 문화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목단강시 산하 6개현(시) 400여 명 운동원 대표들이 모여 영산 줄다리기와 윷놀이, 그리고 가요 콩쿠르 행사를 가졌는데, “영산 줄다리기” 행사는 목단강시에선 전례 없는 특대형 민속놀이 전승 축제였다. 이날 줄다리기 행사는 한국 영산 줄다리기 보존회신수식(辛秀植) 회장이 인솔한 일행 8명이 목단강시에 1주일간 숙박하면서 영 산줄다리기 민속놀이 행사, 짚으로 3가닥 줄을 꼬아 길게 펴놓고 한 가닥씩 감고 돌려 줄이 단단히 꼬이도록 만들어진 영산줄 제작과 줄다리기 방법까지 지도하고 마지막 경기에도 동참했다. 목단강시위 선전부, 시정협, 시문화국 등 지도자들도 직접 경기에 참여했는데, “영산 줄다리기” 민속 활동은 목단강시에서 처음으로 가진 뜻 깊은 민속 활동의 전승으로 시당국은 국경을 넘어와 직접 지도하며 많은 수고를 한 한국 손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표하고 함께 기념 사진도 찍었다.

참고문헌
  • 주봉남·한동걸,「산재 지구 조선족 문화 예술의 현황 및 발전에 대하여」(『예술 세계』,연변인민출판사, 2007)
  • 주봉남,「목단강시 조선족 예술관 경영 비결: 목단강시 조선족 예술관의 사업 성과」(『예술 세계』, 연변인민출판사, 2008)
  • 김영건 외, 「목단강시 조선족 예술관의 어제와 오늘」(『문화 시대』, 연변인민출판사. 2011)
  • 임영상, 「동북 조선족 문화관과 한국 사회의 협력」(『재외 한인 연구』, 2012)
  • 임영상, 「동북의 조선족 문화관과 콘텐츠 기획」, (『역사 문화 연구』, 2012)
  • 「“영산 줄다리기” 행사가 목단강시 조선족 문화 광장에서」(『흑룡강 코리언』 (http://korean.com.cn/index.php?document_srl=153524&mid=News_Jing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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