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국적과 민족의 경계선에서 조선족이라 불리는 사람들

한자 國籍과 民族의 境界線에서 朝鮮族이라 불리는 사람들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개괄

중국 조선족이라는 이름에는 ‘중국’과 ‘조선’이 함께 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조선’은 조선 민족이다. 국가의 코드로 보면 조선족은 중국 사람[중국 공민]이다. 민족적으로 따지면 ‘한민족’이고, 대한민국의 재외 동포이다.

한인[조선족]은 중국 공민으로서의 국민 정체성과 한민족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중국의 산업화, 도시화, 지구화로 인한 인구 이동으로 한인[조선족]은 더 이상 ‘중국 조선족’ 또는 ‘한국의 재외 동포’가 아니다. ‘동아시아 조선족’ 또는 ‘세계의 조선족’이 논의되는 이유이다.

중국 조선족의 기원

조선족의 기원은 19세기 중엽 자연재해로 인해 한반도 북부로부터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만주 쪽에 자리 잡은 조선 사람들이다. 그들은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 시기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어떤 국가 또는 민족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그들 스스로 ‘조선 사람[조선인]’이라고 생각하였음은 여러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나라를 잃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또는 일제의 수탈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만주로 가서 살아야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중국 조선족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만주의 조선 사람’들이었다.

시간적으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공간적으로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경쟁하는 만주라는 지역에서, 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자아 인식을 만들어왔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중국 통일을 위한 각축 속에서 만주의 조선인들은 농민 해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6·25 전쟁 시기에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참여하여 만주 지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역으로 남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주어진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이다. 중국 정부는 1950년대 변방에 있는 소수 집단들에 대한 조사 식별 사업을 진행하고 50여 개의 소수 민족을 지정하였다. 중국 동북 지방의 조선족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와 개혁·개방 시기 온건한 소수 민족 정책의 혜택을 보았다.

민족 학교를 운영하고 조선어로 교육을 받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에서는 조선어가 공식 언어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건립되었고, 이곳에서는 한인[조선족]이 정치와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인[조선족]의 많은 인사들은 1950~1960년대 반우파 투쟁,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 등 현대 중국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 박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한인[조선족]의 집거 지역을 형성하여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자치를 행하였던 것은 한인[조선족]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 민족 등 56개 민족 집단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통일 국가이다. 대부분의 소수 민족들이 국가를 이룰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하였고, 역사적 사회적 발전 단계도 여러 가지였다. 중국 정부가 1950~1960년대 민족 식별 과정에서 조선족을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였다.

한인[조선족]은 55개 소수 민족 집단 중 사회 경제적 발전이 가장 빠르고 교육 수준도 가장 높은 우수한 집단으로 인정받아왔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 민족 정책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항상 한인[조선족]의 예를 들어왔다. 한인[조선족]은 국경을 넘어 동일한 혈통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과계(跨界) 또는 과경(跨境) 민족이라는 점에서 다른 소수 민족과 다르다. 한국과 북한의 존재는 중국 공산당이 한인[조선족]의 위상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염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만남

중국 한인[조선족] 사회가 한국과 직접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전후이다. 그동안 중국 한인[조선족] 공동체는 큰 변화를 겪어왔다. 한인[조선족] 사회의 변동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 전체의 변동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중국 사회의 변화가 급격했을 뿐만 아니라 한인[조선족] 사회의 변화는 ‘한국의 존재’로 인해 그 양상이 더욱 심화된 경향이 있다.

한인[조선족]의 민족 정체성과 민족 문화의 기반인 조선족 마을과 조선족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한인[조선족]의 이동으로 생기는 민족 집거 지역의 공간이 한족들에 의해 메워지고 있다. 이홍우는 『조선족의 전망』이라는 책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인[조선족] 인구 점유율이 현재 약 40%에서 21세기 초 20%, 21세기 말 10% 이하로 떨어지리라고 예상하였다.

한인[조선족]은 중국 동북 지방의 외래적 환경에서 ‘주변인’으로 살아오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늘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한인[조선족]은 한국과 직접 관계를 맺은 이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심각하게 제기하고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이 물음은 그 동안 정을 붙이고 살아온 중국과 한중수교 이후 고국으로 다가온 한국 사이에서 “우리 마음의 귀숙(歸宿)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흑룡강 신문』1995년 4월∼9월 지상 문화 토론).

소설가 허련순은 『바람꽃』이라는 작품에서 한인[조선족]을 '바람이 불어왔던 곳과 바람이 자는 그 곳, 두 세계 중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바람꽃'에 비유하였다. 이 소설은 한인[조선족]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귀추 없이 떠돌아다니는 바람꽃. 바람이 불어왔던 곳과 바람이 자는 그 곳, 두 세계 중의 어느 한 곳에 머무르거나 또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도 못한 채 두 곳을 끊임없이 우왕좌왕하였다. 언제나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다른 한 곳에 대한 끊임없는 추억과 망각, 그리움과 원망의 갈등을 수없이 겪으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없이 날아갔었다. 언제나 두 세계에서 함께 공존했던 셈이고 두 세계에서 함께 탈출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나는 누구일까?”

조선족의 정체성

두 세계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첫 번째 시도는 ‘낳아준 정’과 ‘키워준 정’에 대한 논의이다. 이에 대해 김재국은 『한국은 없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아들이자 중국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결국 키워준 부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인[조선족]이 처한 현실이다.”라고 언급했다.

두 번째 시도는 ‘며느리론’이다. 한인[조선족]은 ‘중국에 시집온 며느리’이다. 중국에 시집온 이상, 중국 남편과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하고 친정집과는 좀 거리를 두어야 하며 우선 시집의 가법을 잘 지켜야 한다. 이에 대해 정판룡은 『세계 속의 우리 민족』이라는 저술에서 “조선족은 중국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자기 민족의 운명을 중국의 운명과 함께 생각하게 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이중 문화 또는 이중 심리[이중 정체성]을 가진 ‘중국의 조선족’이 되었다”고 설파했다. 한인[조선족]의 이중 정체성은 ‘중국은 조국, 조선은 모국 또는 고국’이라는 논의와도 연결된다.

흑룡강 신문은 1995년 수 개월간의 지상 토론을 통해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조선족은 중국 사람이다. 우리는 중국의 조선족이다. 우리는 중국 사람이라는 운명을 선택하였다. (중략) 중국만이 우리를 품어줄 수 있다. 우리의 미래와 희망은 중국에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뿌리를 이 땅에 옮겼으며,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현명한 소수 민족이며, 이 땅의 주인으로서 조선족은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전심전력해야 할 것이다.”(『흑룡강 신문』1995. 4. 1.) 조선족 정체성에 관한 논의의 귀결은 ‘중국 한인[조선족]은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난 중국의 국민’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한인[조선족] 자신들의 현주소 인식이다.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을 구명하려는 세 번째 시도는 김강일의 변연 문화론(邊緣文化論)이다. 이 논의에 따르면, 한인[조선족]의 문화와 정체성은 중국과 조선의 문화와 정체성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문화와 정체성이다. 한인[조선족]은 중국 내에서 평등하면서도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과 혈연적인 유대가 있으면서도 또 구별되기도 하는 특수한 문화 공동체이다. 한인[조선족]은 이런 사실을 확실히 해야 중국에서 국민으로서의 평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주권 국가의 국민으로서 동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김강일은 “중국 한인[조선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한인[조선족]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조선족은 '중국 내에서 평등하면서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과도 혈연적인 유대가 있으면서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은 이같이 분명한 자기 규정을 통해서만 “한국과의 관계에서 야기된 굴종적인 문화 성격을 극복하고 주권 국가의 국민으로서 동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는 중국 한인[조선족]이 스스로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성일의 ‘조선족 문화 이중성 이론’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신조선족, 동아시아 조선족

최근 지구화, 시장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신조선족’의 논의가 등장하였다. 김문학의 ‘신조선족론’ 또는 ‘조선족 문화 개조론’이 대표적이다. 이 논의는 경계를 넘어 유목민[호모 노마드]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인[조선족]의 위상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조선족]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을 떠나 한국으로 그리고 세계 각지로 이동하고 있으므로, 문화적 동일성이나 순혈주의적 단일 민족이라는 틀 속에 한인[조선족]을 가두어 두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융되어 있다.

이 논의는 지구촌의 글로벌한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다문화 시대를 맞아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조선족‘이란 새로운 생활 문화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새로운 의식과 가치관, 시각을 갖춘 새로운 한인[조선족]의 탄생을 의미한다.

한인[조선족]의 정체성을 논하는 중국 한인[조선족] 학자들은 "조선족들은 중국으로의 이주, 정착, 그리고 삶의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인정한다.

만주 지역에서 벼농사 지대를 개척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며, 항일 투쟁과 국공 내전 시기에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공산당과 함께 신중국의 성립에 기여하였다. 이것이 조선인이 ‘중국의 조선족’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한인[조선족]은 신중국에서 ‘모범적 소수 민족’으로서 민족 단결, 민족 평등, 민족 자치를 모토로 하는 중국의 민족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 반우파 투쟁, 대약진, 문화 대혁명 등 ‘대한족주의’의 시기에는 ‘지방 민족주의’로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국내의 정치적 격변기를 극복한 한인[조선족]은 개방 개혁의 격랑을 맞아 시장화, 도시화, 세계화의 변화를 겪게 된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는 한인[조선족]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한국과의 만남’을 통하여 ‘중국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가 하면, 국외 이주 및 체류를 통하여 ‘재한 조선족’, ‘재일 조선족’ 나아가 ‘동아시아 조선족’이라고 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인[조선족]은 150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중국 공민이자 재중 동포로, 그리고 동아시아인으로 중첩적인 정체성을 가지며 생활하고 있다. 한인[조선족]은 중국인으로서의 국민 정체성, 한국인의 재외 동포로서의 종족 정체성, 인구 확산으로 생성되고 있는 글로벌 또는 동아시아적인 정체성으로서의 한인[조선족]이라는 세 차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즉 중국 국민으로서의 조선족, 한민족으로서의 조선족, 글로벌 이슈로서의 조선족의 이동 등과 관련하여 각기 다르면서도 중첩되는 면이 없지 않은 세 가지의 측면을 공히 염두에 둘 때 한인[조선족] 사회의 변화 양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보통 사람의 이동은 한인[조선족]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국경을 넘어서는 한인[조선족]의 움직임은 타 집단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인[조선족]의 이런 움직임을 ‘동아시아에서의 초국가·탈국경적[트랜스내셔널] 활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인[조선족]의 전통적인 거주지인 중국의 동북지방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은 동아시아 한민족의 ‘트랜스내셔널’한 교류의 교차점이다. 중국의 한인[조선족]은 한중(韓中), 중조(中朝), 중러, 한중조(韓中朝)의 각각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한인[조선족]은 이제 단순히 ‘중국의 조선족’이라거나 한반도 재외 동포의 일원으로 규정할 수 없다. 한인[조선족]은 지구화 시대,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교량 역할을 할 존재이다. 새로운 공간이 짜여지는 시대, ‘가깝지만 먼 이웃’들인 중국, 일본, 한반도를 누가 이어줄 것인가. ‘동아시아의 조선족’이 상호 이해와 소통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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