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비밀기지 이륭양행과 푸른 눈의 후원자, 쇼우

한자 大韓民國 臨時政府 秘密基地 怡隆洋行과 푸른 눈의 後援者, 쇼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요령성 단동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기지와 그 후원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대 일제시대
소재지 요령성 안동현
정의

요령성 단동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동 교통국의 비밀기지로 활용된 이륭양행과 그 운영자 아일랜드계의 영국인 조지 엘 쇼우(George. L. Show)에 대한 이야기.

개설

요령성 안동은 한민족의 항일투쟁사에서 빼놓은 수 없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상해 임시 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를 비롯하여 안창호, 이상룡, 이회영, 김원봉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일투사들이 안동을 거쳐서 상해나 만주로 망명했으며, 대한 독립 청년단, 임시정부 안동 교통국, 안동 임시 의사회, 대한 독립단, 의열단, 조선 혁명군, 한중 항일 연군 등이 활발하게 항일 투쟁을 전개한 곳이었다.

쇼우는 일본 경찰의 위협과 방해공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해 임시 정부, 대한 독립 청년단, 안동 임시 의사회, 의열단, 대한 독립단 등의 수많은 항일 투쟁 단체들을 도왔고, 상해 임시 정부 주석이었던 김구를 비롯하여 김가진, 이동휘, 오동진, 김원봉, 안병찬, 오학수, 함석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립 투사들의 항일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사람이다.

쇼우는 항일 투쟁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이륭양행의 직원들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영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풀려난 쇼우는 단동 지역 한인들과 함께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과 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독립 투쟁의 통신본부, 안동 교통국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정원의 의결에 따라 교통부령이 발표 되었다. 상해 임시 정부는 독립 투쟁 단체들의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통신연락기관의 설립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1919년 당시 중국은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통신 시설도 열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임시정부는 상해와 국내 연락이 가장 용이한 안동[安東: 현재 단동시]에 쇼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이륭양행 2층에 교통국을 설치하여 극비리에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안동 교통국은 임시정부와 국내 항일 단체나 애국 지사들과의 각종 통신 업무, 독립 자금 모금활동, 각종 정보 수집과 전달, 교통국 조직의 확충과 독립 투쟁을 위한 지원 활동, 독립군의 무기, 탄약을 운반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추적인 기관이었다.

푸른 눈의 독립 투사, 조지 쇼우

이륭양행의 운영자이며 한국 독립운동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 사람 조지 엘 쇼우, 그가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던 사실은 한국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등에 많이 기록되어 오늘에 전하고 있다.

백범김구는 1919년 3.1 운동 직후 삼천리 강토에 불어 닥친 왜놈들의 무자비한 검거와 탄압을 피해서 압록강을 건넜다. 그는 조국 광복의 원대한 꿈을 품고 상해로 망명하는 15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동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단동에서 일주일을 지낸 후 이륭양행의 계림호를 타고 상해로 떠나게 되는데 이때 김구 일행이 겪었던 망명의 순간을 『백범 일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중국인의 인력거를 불러 타고 바로 큰 다리 위를 지나서 안동현의 어떤 여관에서 변성명하고 좁쌀 장수라 표방하고 일주일을 묵은 뒤 이륭양행의 배를 타고 상해로 출발하였다. 황해 해안을 경과할 시에 일본 경비선이 나팔을 불고 따라오며 정선을 요구하나 영국인 함장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전속력으로 경비구역을 벗어나 4일 후에 무사히 상해 황포강 나루에 닻을 내렸다. 배에 함께 탄 동지는 총 15명이었다.” 조선총독부 경비선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백범 일행을 상해로 탈출시켰던 영국인 함장은 쇼우였다.

‘상해 임시정부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의 『장강 일기』에도 이륭양행과 조지 쇼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시아버님[1919년 상해로 망명한 동농 김가진 선생] 일행은 무사히 압록강을 건너 안동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에이레 출신의 쇼우라는 사업가가 있었다. 에이레도 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오래도록 싸워온 나라이므로 자연 한민족의 민족 운동에 깊은 동정을 가졌고, 쇼우는 여러모로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쇼우는 이륭양행이란 회사를 경영했는데, 영국계 태고 선박 공사의 안동현 대리점을 맡고 있었다. 시아버님 일행은 이륭양행이 대리하는 계림호편으로 10월 말에 상해에 도착했다.” 김가진 일가의 상해 망명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은 더욱 더 활기를 띄게 되었고, 해방이 될 때까지 김가진, 김의한, 정정화가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왔던 사람이 바로 조지 쇼우였던 것이다. 정정화가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10여 차례 이상 국내로 잠입하고 상해로 돌아갈 때도 쇼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안동 임시 의사회와 대한 독립 청년단

1919년 3.1 만세 운동 후에 중국으로 망명해 온 애국지사들이 안동현에 있는 조지 쇼우의 집에 모였다. 김승만, 김시점, 오동진, 주석환 등은 항일 구국 투쟁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고 안동현 임시의사회를 조직하게 된다. 이때 쇼우는 김승만 등이 안동일본 영사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집을 근거지로 제공하여 안동 임시의사회의 결성을 도왔고, 그들이 항일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쇼우는 안동 임시 의사회 회원들이 전국적인 조직으로 추진하는 대한 독립 청년단 결성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초 단동시의 구시가지 풍순잔에서 대한 독립 청년단을 결성하기 위해 조재건, 함석은, 오학수, 김시점, 김승만 등이 모였을 때,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독립 자금 모금, 무기의 구입, 지부 확장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조지 쇼우는 이때부터 일본 경찰의 탄압과 검거를 피해 중국의 남방 지역으로 이주해 갈 때까지 대한 독립 청년단 단원들에게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들에게 있어 쇼우는 믿을 수 있는 후원자이자 동지였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항일 투사

한국인들의 항일 투쟁의 후원자요, 파란 눈의 투사였던 조지 쇼우는 1920년 7월에 단동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한국인들의 항일 투쟁을 지원하고 있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조선 총독부는 안동 경찰대에 지시를 내려 그를 전격적으로 체포한 것이다.

영국 영사관에서 즉각 쇼우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영사관이 이를 거부하고 서울로 이송하려 하자, 영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은 쇼우에게 ‘단동을 즉시 떠나지 않으면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협박을 들이댄 다음에 석방하였다.

쇼우는 단동으로 돌아온 후 영국인과 조선인들을 모아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일본의 감시가 날로 심해지고 노골적인 방해 공작으로 자신의 사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일제를 규탄하는 대회를 열어 일본 경찰의 불법적인 탄압을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규탄 대회 소식을 들은 상해 임시 정부는 그를 초청하였다. 1921년 1월 26일에 상해로 건너간 조지 쇼우는 임시정부가 베푼 환영연에 참석하였고,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여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일본 경찰의 집중적인 감시 속에서도 이륭양행 화물선은 변함없이 독립 투사를 싣고 상해를 오고 갔고, 이륭양행 직원들은 중국 내의 합법적 신분을 이용하여 한국인들의 항일 투쟁을 변함없이 지원했다.

쇼우는 영국인이란 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독립 투쟁을 도왔지만, 중국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던 1922년 이륭양행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일본 영사관의 압력과 감시가 없는 중국 남방 지역의 복주(福州, 푸저우)로 가서 임시 정부와 독립 투사들을 후원하는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중국 남부 지방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온 이후에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조지 쇼우는 한국 항일 투쟁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푸른 눈의 후원자, 독립 투사들의 영원한 동지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자료집』 9(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5)
  • 한철호, 「조지 엘 쇼(George L. Shaw)의 한국독립운동 지원활동과 그 의의 : 체포·석방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38,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
  • 유병호,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안동 교통국과 이륭양행 연구」, (『한국 민족 운동사 연구』 62,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 최범산, 『압록강 아리랑: 최범산의 항일 유적 답사기』(달과 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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