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몸은 떠나도 마음은 고향에-상지시 어지조선족향으로 향하는 온정의 손길들

한자 몸은 떠나도 마음은 故鄕에-尙志市 魚池朝鮮族鄕으로 向하는 溫情의 손길들
분야 지리/인문 지리|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시대 현대/현대
조선족 이주자와 송금

과거 20여 년 동안 계속된 중국 동북 3성 조선족의 외부 이주로 인하여 조선족 고향 마을은 인구 구성에 있어서, 그리고 사회 경제적 기반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특히, 지역 사회 밖으로 이주하는 노동력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고향마을을 영구적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큰돈을 벌어 다시 고향마을로 귀향하려는 목적으로 이주를 단행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부의 획득이 이주의 목적이기 때문에 목적지의 다양한 장소를 떠돌면서, 목적지와 기원(起源)지 간을 지속적으로 왕래하면서 두 지역을 연결하는 사회적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이주자들의 기원지와 목적지 간에는 조선족 사회네트워크가 친족 및 친구 간에 긴밀하게 형성되어 각종 정보와 자원의 흐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중국과 한국 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에 들어갔던 소수의 친족들이 국제 우편을 통해, 혹은 인편을 통해 한국의 물건을 보내주거나 돈을 송금하는 등의 극히 제한된 범위의 사회네트워크가 형성되었지만, 이후 그러한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그 양도 급증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은 고향 마을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 친지들에게 노동으로 벌어들인 급료의 대부분을 송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 농기구 등 다양한 한국 제품을 보내주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에, 그리고 고향 마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으로의 노동 이주가 본격화된 1990년대 초반에 청장년층으로서 한국에 진출하여 많은 돈을 벌었던 초창기 이주자들은 현재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되었다. 한국의 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건설업 등에서 주로 육체 노동에 종사했던 이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자녀들이 이제는 3,40대가 되어 그들의 부모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하여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20년 전에 했던 것처럼 한국으로 이주해가 노동으로 번 돈을 이제는 고향 마을로 돌아간 부모들에게 송금해주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부의 획득과 아울러 고향인 중국으로 귀환하여 그 부를 누리는 것이 그들의 역외 이주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짧은 기간 내에 커다란 경제적 성취를 이룩하고 이를 원활하게 고향으로 송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송금(economic remittance) 송금은 노동의 대가로 얻어낸 급료를 기원지로 송금하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가족 및 친족 구성원들 간에 활발하게 전달된다. 또 다른 송금의 유형인 사회적 송금(social remittance)은 정착국의 선진적 아이디어나 기술, 제도 등을 기원지로 보내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차원의 자산의 흐름을 의미한다.

중국 동북 3성으로 들어가는 경제적, 사회적 송금은 남겨진 가족구성원들의 생활비로도 쓰여 지고, 또한 다른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으로서 쓰여 진다. 아울러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 운영제도를 혁신하는 등 돌아가 여생을 보내게 될 고향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도 쓰여 진다. 이러한 송금을 통해 전통의 조선족 농촌마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흑룡강성 상지시의 어지조선족향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지조선족향의 지리적 특성과 인구 구성 변화

어지조선족향상지시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분지 지형에 펼쳐져 있다. 상지에서 가장 큰 하천인 마이하가 관류하고 있고, 벼농사에 유리한 토양 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 농업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연강수량은 600㎜ 정도에 불과하나, 작물 생장기인 여름철에 집중하는 강수특성을 보이고 있고, 또한 마이하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데 기여하고 있어 농작물 재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조건 속에서 중국 변방 지역 중에는 드물게 경작지 총면적에서 수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변방 동북 지역에서 수전의 경영은 한인의 이주와 정착에 의한 산물이며, 지금도 조선족 마을의 주력 농작물이 되고 있다. 중국 동북 3성의 농촌 지역에서 조선족의 수입이 한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유도 바로 탁월한 수전 농업 기술과 관련이 있다. 교통 측면에서도 이곳은 중국 동북 지방의 간선 철도 노선인 빈수선[濱綏線: 하얼빈-수분하 간 549㎞]이 동서로 뻗어있고, 301번 국도도 지나가고 있어 하얼빈과 목단강과의 연결성도 좋은 편이다.

일제 강점기 위만 통치시기에 일제의 계획에 따라 한반도에서 한인들이 이주하여 처음 건설된 이곳의 조선족 집단 부락들은 이후 70여 년 동안 여러 차례의 행정 제도 변경을 거쳐 현재 신흥촌, 금하촌, 흥안촌, 창평촌 등 4개의 조선족 행정촌으로 재구성되었다. 여기에 3개의 한족 행정촌을 합하여 어지조선족향을 이루고 있다.

어지조선족향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1990년의 일인데, 이 시기는 조선족 인구의 역외 이주가 본격화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2001년 이후 최근까지 오랫동안 신흥촌의 당 지부 서기를 맡아왔던 김동호의 전언에 의하면, 현재 어지조선족향에는 665세대가 등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역외로 이주해 나가고 불과 58가구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중국 조선족 농촌 기행』의 내용을 인용하면, 2008년 당시 640세대에 2,740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며, 노무 송출[역외 노동 이주]을 다녀온 인구가 2,000여 명에 달하고 대도시에 진출한 인구가 1,3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청장년층 경제활동 인구의 역외 노동이주로 인해 출산력이 저하되고, 남아있는 학생 인구층과 그들의 조부모 인구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상지시 등 도시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 심화되면서 향내에 있던 소학교는 결국 2009년에 폐교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조선족 절대 인구수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 향의 조선족 인구의 급감 상황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역외로부터 벌어들여 마을로 유입되고 있는 송금은 결국 조선족 인구의 경제력 증진과 마을의 생활 환경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어 부정적인 면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역외 이주 인구의 약 80%는 한국에 체류 중이며, 대부분이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고향 마을의 지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에는 세 가구가 귀향하여 새 집을 건립하고 살고 있으며, 지금도 귀향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주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지조선족향의 새농촌 건설 사업과 성과

전통적으로 수전 농업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어 안정된 상황을 유지해온 어지조선족향의 조선족 부락들은 1990년대의 역외 노동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큰 변혁을 겪게 된다. 그 직전인 1980년대 어지조선족향 신흥촌의 상황은 부유한 농촌 마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즉, 당시 촌 내에는 168세대, 680명의 인구가 130㏊[그 중 한전은 30여 ㏊]의 경작지를 경영하고 있었고, 이는 인근 조선족촌 중에서 제일 큰 규모의 마을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이미 세대별 생산량 도급제를 도입하였고, 벼 재배의 신기술인 한육모 초회식 재배법은 물론이고 모내기의 기계화가 도입돼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크게 증가하였다. 수확량의 증가로 시장 판매량도 증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농가 소득도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처럼 부유하고 안정된 조선족 마을의 상황은 19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의 노동 인구 송출로 인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으로의 노동 인구 송출이 조선족 농촌 공동체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관점과는 달리, 어지조선족향 신흥촌의 상황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지적되듯이, 조선족 농촌 인구의 역외 이주는 농경지 경작 노동력의 감소로 이어져 결국 농경지를 한족들에게 임대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조선족 마을 공동체의 민족 정체성이 훼손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흥촌의 경우, 경작지의 임대가 곧 마을 공동체의 쇠락이나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발전하는 농촌 공동체의 모범적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자신의 경작지를 직접 경영할 수 없게 된 신흥촌의 역외 이주자들은 한족 농민 등과 개인 대 개인으로 임대 계약을 체결할 뿐만 아니라, 신흥촌 자체에 경작지를 맡기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결국 마을 공동체의 공동 기금 조성에 기여하여 마을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마을의 경우, 전통의 수전 농업이 여전히 마을을 지탱하는 근간 산업이기에 조선족 농업 노동력이 대폭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의 지원과 조선족 역외 이주자들의 송금을 활용하여 합작 수도작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농촌 개혁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마을의 생활 환경도 역외 이주자들이 보내주는 송금에 의해 크게 개선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큰 변화는 유입된 송금으로 목돈을 들여 신식 벽돌집을 세우는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정용 전화가 가설되고, 컬러 TV와 냉장고, 컴퓨터 등과 같은 최신 가전 용품들이 들어서고 있다. 통신 환경의 개선은 국경을 뛰어넘은 이주자 사회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공공히 해주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한국으로부터의 글로벌한 정보와 엔터테인먼트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배가시켜주고 있다. 마을의 공동 시설인 마을 회관은 물론이고, 마을의 도로 정비 사업도 마을로 직접 보내지는 송금들이 모여 건설되고 있다. 가령 신흥촌 노인 협회에서는 역외 이주자들이 모아준 송금으로 활동실을 갖추고 있고, 이를 제외하고도 2008년 현재 한국과 중국의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출신 이주자 82명이 100원~1,000원씩 기부하여 고정 재산 8천원에 유동자금 3만여원이 기탁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존의 수전 농업 기반의 경제 발전 전략에 더하여 역외 이주자들의 송금을 통한 마을 공동체의 경제 발전 전략이 적절하게 결합시켜 현재의 마을 공동체 거주자들의 안녕을 도모함은 물론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귀환하게 될 역외 이주자들도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거주 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인근의 야부리산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스키장인 야부리 스키장과 관련된 관광 관련 산업들에도 적극 참여를 추진함으로써 마을의 경제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새롭게 발전된 농촌 공동체의 재건 과정에는 일부 의식 있는 조선족 지도자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직 당서기인 김동호(57세)의 경우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한 바로 그러한 지도자의 좋은 사례이다.

그도 역시 1992~1996년 사이에 한국에서 주로 지하철 건설 노동자로서 일하면서 송금을 해온 경험이 있으며, 귀향 후에도 잠시 쉰 후 다시 돈을 벌이러 한국에 갈 계획을 잡았으나, 촌로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국행을 접고 마을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행을 통한 개인의 돈벌이를 포기하고 마을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선조들이 맨주먹으로 일구어 옥토로 바꾸어 놓은 조선족 마을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한다. 이 외에도 젊은 조선족 향장과 중국 공무원 혹은 군인으로 복무하며 한국행 경험이 없는 젊은 조선족 청년들이 인근의 한족 정부 관료들과의 유기적인 협조 하에 고향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열의를 가지고 여러 마을 사업들을 구상 및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 지도자들의 고향에 대한 애착은 현 거주자와 역외 이주자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마을 환경 개선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조선족 농촌 마을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서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참고문헌
  • 오신일,「시대와 더불어 발전하고 있는 민족향-상지시 어지조선족향」(『중국 조선족 농촌 기행』, 민족 출판사, 2008)
  • 류충걸 외 2인, 『흑룡강성 조선족 인구와 경제』(연변인민출판사, 2009)
  • 상지시 조선 민족사 집필 위원회, 『상지시 조선 민족사』민족 출판사, 북경, 2009
  • 이영민 외 2인,「중국 조선족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변 지역의 사회 공간적 변화」 (『한국 도시 지리학 회지』 16-3, 2013)
  • 『연변 일보』
  • 『흑룡강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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