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인구 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조선족 사회의 빛과 그림자

한자 人口 移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朝鮮族 社會의 빛과 그림자
분야 지리/인문 지리|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조선족의 인구 이동과 사회 변화

구한말 이래로 한반도 북쪽으로 넘어간 ‘월경 민족’으로서 주로 중국 동북 3성 전역과 그에 인접한 내몽골 지역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던 조선족 사회는 1990년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외 이주의 여파로 큰 변혁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중국 조선족은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길림성(58%), 흑룡강성(16%), 요령성(16%) 등 중국 동북 3성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족 인구는 최근 중국 국내의 연해 지역 및 산업 지역으로, 그리고 국외의 한국을 비롯한 세계 88개국으로 적지 않은 수가 이주해 나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주의 목적지와 기원지를 연결하는 조선족 사회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양쪽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조선족이 가장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총인구는 2010년 현재 약 227만명으로 그 중 조선족은 약 80만명을 차지하고 있는데, 조선족의 인구 규모는 과거 20여 년 동안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한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조선족의 출산율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조선족의 중국 국내 및 국외로의 역외 이주와도 관련이 있다.

전반적인 인구 변동 추이가 이런 가운데, 연변조선족자치주 최대의 도시인 연길시의 경우에는 2013년 현재 총인구가 49만 5,130명으로 집계되었고, 그 중 한족이 19만 6,673명(39.7%)으로 전년 대비 0.27% 감소한 반면 조선족 인구는 28만 6,846명(57.95%)으로 0.35%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의 조선족 인구가 과거 20여 년 동안 꾸준히 감소 혹은 정체를 보여 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연길시의 조선족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농촌 공동체의 특성을 보여 온 조선족 사회가 역외 이주의 사회 네트워크에 맞물려 빠르게 도시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송금액은 연간 1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총생산(GRDP)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통 조선족 사회의 가족 구성과 관계, 농촌 공동체의 성격, 도시화에 따른 사회 문화적 변화 등이 급격하게 바뀌어감으로써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들이 혼재하며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 사회 변화의 긍정적 측면

1980년대 후반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중국은 특히 황해안 연안의 도시들을 경제 특구의 형식으로 육성함으로써 해외로부터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구가하던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도 근거리에 위치한 중국의 연안 경제 특구로 진출하여 생산기지를 건설하였고, 이에 양국 문화에 익숙해있던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들에게 매력적인 고용의 기회를 창출하였다. 또한 1992년의 한중 수교는 초기의 제한적 수준의 친척 방문 형식의 이주를 뛰어 넘어, 이후 한국을 향한 본격적인 노동 이주가 밀물처럼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동북 3성의 경제 활동 인구는 남여를 불문하고 중국 국내의 연해 도시 경제 특구로, 한국을 비롯한 국외의 노동력 수요 발생 지역으로 이주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주는 가족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돈을 벌기 위한 단독 노동 이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에 따라 조선족 이주자들에 의해 역외의 고용 목적지와 중국 동북 3성의 원적지 간을 연결하는 사회 네트워크가 친족 및 친구 간에 긴밀하게 형성되어 각종 정보와 자원의 흐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중 언어와 이중 문화을 체화한 독특한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던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는 1980년대 이후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중국과 한국 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에 들어갔던 소수의 친족들이 국제 우편을 통해, 혹은 인편을 통해 한국의 물건을 보내주거나 돈을 송금하는 등의 극히 제한된 범위의 사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동북 3성 내의 점점 더 많은 경제 활동 인구가 한국으로 이주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가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은 기원지에 남아있는 조선족들에게 노동으로 벌어들인 급료의 대부분을 송금할 뿐만 아니라 전자제품, 농기구 등 다양한 한국 제품을 보내주기도 한다. 이러한 송금의 유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조선족 사회를 한층 부유하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가령 연길시 재정 판공실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연길시는 사회 소비품 판매 총액이 172.41억 원에 달해 전년 대비 12.8%의 성장을 나타냈다. 이를 1인당 사회 소비액으로 환산하여 보면, 전국의 50개 주요 대도시 중에서 8위를 차지하는 수준으로서 그 규모가 상해를 초과하고 있으며, 중국 동북 지역에서도 대련에 버금가고 심양, 장춘, 하얼빈, 길림 등의 도시보다도 우위를 차지하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인당 사회 소비품 판매액은 한 도시가 부유한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중의 하나이다.[연변 일보 2013년 7월 11일자] 도시의 인구 규모의 순위에서는 한참 뒤떨어져 있는 연길시의 이러한 소비 지표는 가히 놀랄만한 일이다.

송금의 유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를 근대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조선족 사회는 전통적으로 수전 농업 중심의 농촌 공동체로서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으며, 기존에도 조선족의 우월한 수전 농업 기술은 질적인 면에서 중국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가령 조선족에 의해 생산된 흑룡강쌀은 품질면에서 중국 최고의 쌀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우수한 수전 농업 기술은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이주자들의 송금의 유입으로 더욱 근대화되어가고 있고, 주변의 한족, 만족들에게도 활발히 전파되고 있다. 비록 조선족 경제 활동 인구의 유출로 농업 노동력은 절대부족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한족들에게 임대 형식으로 조선족 농촌 마을의 농업이 유지되고 있기는 하나, 전체 경작지의 면적은 큰 변동이 없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선족 사회의 붕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조선족 농촌공동체가 의식 있는 조선족 지도자들이 주도가 되어 지역사회 밖으로 이주하여 노동한 사람들의 돈을 잘 유치하고 있으며, 이를 잘 이용하여 장차 역외 이주자들이 고향으로 편안하게 회귀할 수 있도록 새롭게 발전된 조선족 농촌 공동체를 조성해 나가는데 큰 힘을 쏟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 농촌 사회의 노동력 유출은 특히 경제 활동 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로 이어졌지만 송금의 유입으로 인한 농업의 기계화가 실현되고, 일부이기는 하나 마을을 근대적으로 정비하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구한말 이후 한인의 월경 이주에 의해 형성된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는 과거 100여 년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중국 내의 인정받는 소수 민족으로서 자리매김되어 왔다. 이에 더하여 최근 경제 활동 인구의 역외 이주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선족의 위상을 높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주요 산업화 도시들에서 조선족 공동체가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세계 88개국으로 진출하여 분투하고 있는 조선족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더욱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래에 열거할 여러 가지 부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사회는 글로벌 환경과 직접 맞닿아 다양한 발전 방향이 모색되고 있으며,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노정되고 있다.

조선족 사회 변화의 부정적 측면

1990년대 이후의 지역 밖으로의 이주로 인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조선족 사회의 기형적 인구 구조가 점차 심화되어 그 후유증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족 사회에서 빠져나가는 주력 연령 계층은 역시 20~50대의 경제 활동 인구이며, 이들의 유출로 노년층과 유소년층 인구만이 잔류하는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젊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경우 그 유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에 출산력이 빠르게 저하되고 있는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의 노동이주는 물론이고 한국으로의 결혼이주도 크게 증가하였다. 2010년 말 현재, 약 6만 명의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였는데, 이는 동일 연령층 여성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연변 일보 2011년 7월 26일자]. 현재 조선족의 출산 수준은 급격히 감소하여 10년 전에 비해 4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 사회의 기형적 인구 구조는 인구의 노령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족 사회의 출산력은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중국 소수 민족들 중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구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 반면 중국의 경제 수준 향상과 의료 기술의 보급으로 기대수명은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이는 곧 노인 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인구의 노령화는 중국 전체는 물론이고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 사회의 경우,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의 자연적 감소와 아울러 상대적인 고임금 고용을 찾아, 특히 한국 등 국경을 넘는 글로벌 이주를 단행하는 젊은 경제 활동 인구의 이주로 인해 인구 노령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노인 인구층에 대한 사회복지 문제도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 대한 복지 지원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며, 자식들의 지원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경제 활동 인구는 그들의 부모인 노인 인구층이 손자 손녀를 맡아 기르는 일은 이제 조선족 사회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부모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노약한 조부모의 손에 맡겨진 조선족 사회의 유소년 계층은 새로운 가족구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인구의 유출이 전례 없이 활발해지면서 전통적인 조선족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제 활동 인구의 대규모 유출은 조선족 농촌 공동체의 농업 노동력을 급감시켰으며,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농경지는 점차 한족에게 임차되어 경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조선족 농촌 공동체의 인구구조가 기형적으로 바뀜과 동시에 한족 인구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의 순수 조선족 농촌 공동체의 대부분이 조선족 절대 인구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으며, 또한 조선족 인구의 비율도 감소하고 있다. 초중고생 인구와 그들의 조부모만 남게 된 조선족 농촌마을은 조선족에 의한 경제 활동의 활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다. 아울러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농촌마을에는 적만 두고 인근 도시 지역에 아파트를 매입하여 거주하는 자녀-조부모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가령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는 이렇게 농촌으로부터 유입된 조선족 가구들, 특히 초중고생 자녀를 둔 조선족 가구들의 유입으로 아파트 수요가 폭증하고 있으며 그 가격도 치솟고 있다. 2013년 8월 현재 연길시의 신규 주택 분양가는 ㎡당 최고 7000위안으로 인구 750만 명이 넘는 길림성 성도인 장춘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치솟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번 돈을 연변으로 송금하면서 현지 물가와 토지 가격이 급등한 데 편승해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흑룡강 신문 2013. 8. 16]. 이렇게 도시로 진출한 자녀들은 도시의 조선족 학교 혹은 한족 학교에 다니면서 도시적 생활 양식을 어렸을 때부터 습득함으로써 부모 및 조부모 세대와는 매우 다른 가치관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의식은 민족교육의 위축과 민족정체성의 변화이다[흑룡강 신문 2013년 8월 2일자].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는 1980년대 말부터 농촌 인구의 도시 유출 및 해외로의 노동력 송출 등으로 인하여 출산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이에 연동하여 나타난 조선족 학생들의 감소는 조선족 농촌 학교가 빠른 속도로 폐교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급기야 21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향진 이하의 거의 모든 조선족 농촌 소학교가 폐교되기에 이르렀고, 도시 지역의 조선족 학교들조차도 학생 수가 감소되거나 폐교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조선족 학교의 감소는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조선족 언어와 문화를 접할 기회를 박탈하게 되고, 결국 조선족 민족 정체성의 유지가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차 팽배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노력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 및 유지 전략들 모색되고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 권태환 외,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 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 류충걸·김석주·김화, 『흑룡강성조선족 인구와 경제』(연변인민출판사, 2008)
  • 안병삼, 『초국가적 이동현상에 따른 중국 조선족의 가족 해체 연구』(『한국 동북아 논총』 52, 2009)
  • 이영민·이용균·이현욱, 『중국 조선족의 트랜스 이주와 로컬리티의 변화 연구: 서울 자양동 중국 음식 문화 거리를 사례로』(한국 도시 지리학 회지 15-2, 2012)
  • 김두섭·류정균, 「연변 조선족 인구의 최근 변화 : 1990년, 2000년 및 2010년 중국 인구 센서스 자료의 분석」(『중소 연구』 36-4, 2013)
  • 『연변 일보』(2013. 7. 11.)
  • 『흑룡강 신문』(201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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