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撫順 朝鮮族의 藝術 엿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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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요령성 무순시 |
| 시대 | 현대/현대 |
| 문화관 | 무순시 신무구 동6로 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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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 지역의 조선족은 이미 청나라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기 시작하여, 일찍이 조선족의 예술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 조선족의 예술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한반도에서 넘어온 예술을 바탕으로 하여 이를 그대로 향유하였으나, 중국 사회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점점 중국 예술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특색 있고, 향토 맛이 풍기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 예술로 형성하게 되었다.
1940년대부터 정진옥 등 조선 의용군 선전대의 대원들은 이 지역에서 많은 예술 공연을 하였으며, 유덕수, 서영화, 이도삼, 문제동, 최혜순 등 무순 사람들의 예술 공연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무순은 해방(1949년) 이후 중국 동북 지역에서 조선족 문화 예술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역으로, 이에 대한 이해는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 예술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무순 조선족 예술은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撫順市朝鮮族文化館), 조선족 소학교(朝鮮族小學校), 조선족 중학교(朝鮮族中學校), 노인 협회(老人協會)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음악, 미술, 문학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撫順市朝鮮族文化館)은 1951년 6월 15일에 정식으로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겨우 3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일정한 사무 공간이 없어 당시 신무구(新撫區) 서2로(西2路)에 있는 조선 인민 소비 합작사(朝鮮人民消費合作社)의 경비실 반 칸을 빌어 업무를 시작하였다. 1951년에 무순시 조선 인민 문화관(撫順市朝鮮人民文化館)은 신무구 동4로 동1가(新撫區 東4路 東1街)의 작은 2층집으로 옮겨졌고, 면적이 240㎡에 인원도 6명으로 늘었다. 1953년 무순시 인민 정부 문화처(撫順市人民政府文化處)의 결정에 따라 무순시 조선 문화관(撫順市朝鮮文化館)으로 개칭되었다. 1954년부터 1965년까지 매년 봄·가을에는 조선족 전통 체육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55년에 제1회 조선족 예술 공연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문화 예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79년 요령성과 무순시에서 총 25만 위안을 투자하여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의 관사를 짓기 시작하여 1981년에 준공하였다. 1983년 인원이 20명으로 늘어나고, 1987년에 김시찬이 관장직으로 부임하였고, 1992년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이 현급(縣級)으로 승급되었다. 2000년에 김애화가 부관장으로 부임되면서 모든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의 노력으로 서민 예술 활동은 매우 활기 있는 분위기였으며, 무순시, 조선족향, 조선족진, 조선족 마을에 다양한 서민 예술 활동을 전개하는 등 도시와 농촌의 문화 생활을 풍부하게 하였다.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은 60 여 년 동안 조선족의 문화 예술을 전승·발전시켜, 조선족의 민족 정신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업적을 몇 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 문화 유산의 수집과 정리, 그리고 발굴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무순시는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조선족의 전통 문화에 대한 갈망 역시 매우 강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지역에는 농악무, 부채춤, 장고춤, 아리랑, 심청가, 도라지, 농부가 등 조선족의 무용과 노래가 공연되는 무대를 자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공연들은 많은 조선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으로 부채춤과 장고춤은 무순시의 비물질 문화 유산(非物質文化遺産)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둘째, 문화 예술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하였다. 특히 시(市), 향(鄕), 진(鎭), 기업 등 각 계층의 조선족 문화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무순시에는 조선족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며, 예술 활동의 자금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무순시 조선족 협회, 무순시 조선족 기업 협회 등의 단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음악 이론, 작곡, 무용, 미술, 촬영 등 각종 장·단기 강습반을 개설하여 조선족의 전통 예술을 서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 예술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조선족 소학교와 중학교의 음악교사에게 음악이론과 작곡, 그리고 조선족 노래 연창 등 강습반을 개설하는 등 예술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셋째, 각종 예술 활동과 축제를 개최하여 조선족 문화 예술 사업의 번창을 촉진시켰다. 조선족 민속 축제, 축구경기, 예술경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선족의 예술을 전파하고, 조선족 사이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중에 “조선족 민속 축제”가 가장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단오절에는 무순시의 조선족들이 조선족의 전통 노래, 무용, 기악 등을 선보이면서 명절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이 축제는 이미 무순시 조선족의 대표 행사로 자리를 잡았고, 행사 때마다 요령성과 무순시의 많은 고위 관계자들도 참석하고 있다.
넷째, 정기 간행물을 통해 조선족 예술을 광범위하게 전파하려 노력하였다. 1980년대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시작할 때부터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은 조선족의 예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1982년에 『새노래』, 1983년에 『꽃봉오리』의 정기 간행물을 창간하였다. 그러나 『꽃봉오리』는 1987년에 간행이 중단되었고, 『새노래』 역시 1990년에 간행이 중단되게 되었다.
무순시는 일찍부터 한국과 많은 교류를 시작하였고, 예술분야에도 이러한 교류에 힘입어 많은 결실을 맺었다. 예를 들어, 2010년부터 무순시의 조선족 문화관과 조선족 경제 문화 교류 협회를 주최하고, 한국의 광주시, 성남시, 동해시와 협력하여 “중한 문화 주간”을 개최하였으며, 이를 시작으로 매년 “중한 문화 주간”의 행사가 성사되었으며, 올해에는 이미 네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한 문화 주간”에는 한국과 중국의 예술을 소개, 전시하는 형식을 중심으로, 예술 공연, 영화 관람, 사진전시회, 조선족 전통장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되어 있다. 중한 문화주는 이미 무순시의 중요한 문화 교류 행사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관객들이 모이는 계기가 되어 한국 문화 예술을 소개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의 강원도, 동해시, 광주시 등 지역과 손을 잡고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공연을 통해 한국 예술의 소개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중한 문화주는 조선족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에게도 조선족의 전통 예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며, 더불어 한국의 많은 예술도 함께 선보이는 행사라는 점에서 중국 사람에게 한국의 전통 예술을 알리는 매우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이번에 무순시의 조선족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조선족으로서의 대단한 자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경향과 매우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의 예술을 보존·발전하려는 의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무순시의 조선족 예술을 가을의 사과나무처럼 주렁주렁 좋은 결실을 맺게 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결실들은 어느 한 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많은 예술 분야에서 적지 않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무순시의 많은 조선족 예술에서는 “부채춤”과 “장고춤”이 무순시의 비물질 문화 유산(非物質文化遺産)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부채춤”의 기능보유자로 이도선(李道善, 부채춤)과 장정(張晶, 부채춤)이 지정되었고, “장고춤”의 기능 보유자로는 황영옥(黃英玉, 장고춤)이 지정되었다. “부채춤”과 “장고춤”은 조선족을 대표하는 전통 무용이며, 조선족이 사는 여러 지역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부채춤”과 “장고춤”이 있다.
무순시의 “부채춤”과 “장고춤”은 한국의 것과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조선족의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과 기능 보유자를 따로 지정하고 있을 만큼 조선족의 전통 예술을 체계적으로 전승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