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관애

한자 北溝 關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관애)
양식 석축
크기 259m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
현 소재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사첨자진 북구촌간구자 협곡
원소재지 요령성 환인현 사첨자진 북구촌 간구자 협곡
정의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사첨자진 북구촌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

개설

북구 관애는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사첨자진 북구촌간구자 협곡에 위치한 고구려의 관애이다. 북구 관애고구려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한 방어선으로 추정된다. 북구 관애는 특히 성장립자 산성이나 와방구 산성 등과 함께 환인 지역에서 혼강 하류 방면을 경유하여 집안 경내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위치한다. 이것으로 보아 이들 산성과 함께 혼강 하류 일대에서 도성 외곽의 방어선을 구성하였다고 파악되며, 환인 분지로 향하는 적군을 방어하는 기능도 겸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위치

북구 관애는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사첨자진 북구촌 서남쪽 1.5㎞의 간구자(干溝子) 협곡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서 혼강의 지류인 누하(漏河)가 남류하고 있다. 관애가 입지한 간구자는 협곡 입구가 비교적 트여 있는 소규모의 충적 평지인데,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좁아지다가 약 2.5㎞ 지점에서 각각 ‘남간구(南干溝)’와 ‘북간구(北干溝)’의 두 개 골짜기로 갈라진다. 골짜기 양 옆으로는 산들이 이어지면서 높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으며, 골짜기는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좁아지는데, 간구자 협곡을 따라 흐르는 간구자하(干溝子河)는 북간구 가장 위쪽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관애를 지나 간구자촌 서쪽에서 혼강 지류인 누하(漏河)에 유입된다. 간구자하를 따라 지방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관애를 통과하고 있다.

북구 관애는 북간구에 설치되어 있는데, 골짜기 입구에서 약 1㎞ 거리로서 협곡이 완만하게 꺾이는 좁고 험준한 요충지로서 골짜기 전체를 단단히 봉쇄하고 있다. 관애를 지나 동쪽으로 나아가면 집안시 경내에 도달하게 된다.

형태

북구 관애 양단의 성벽은 산허리부터 쌓기 시작했는데, 성벽이 우뚝 솟은 절벽(石崖)과 연이어져 자연 지형과 인공 성벽이 결합된 봉쇄선을 형성하고 있다. 남단 절벽은 길이 100여m, 높이 20여m로 마치 자연적으로 구축된 성벽과 같으며, 북단 절벽은 길이 10여m, 높이 2-4m이다. 두 절벽 사이에 인공 성벽을 길게 가로질러 축조하였는데 인공 성벽의 전체 길이는 259m이다.

1990년 조사 당시 남단의 석벽 88m, 북단의 석벽 134m가 남아 있었으나 중앙부 37m 정도는 하천과 도로에 의해 파괴되었다. 석벽은 많이 허물어져 돌두둑처럼 변했으나 여전히 흔적이 선명하다. 남단 약 10m는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인데, 여러 층으로 쌓은 큰 돌을 볼 수 있다. 외벽의 성돌은 대부분 장방형(長方形)이고 쐐기형은 적다. 남단 약 10m는 여러 층으로 쌓은 큰 돌을 볼 수 있는데 바깥쪽 외벽은 잘 다듬은 돌을 층층이 쌓아 올렸고 그 안에는 잔돌로 메웠다.

관문(關門)은 본래 현재 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밖에 하천이 흐르는 지점 아래에는 원래 수문(水門)이나 수책(水柵) 같은 것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파괴가 심하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관애 북단 동쪽의 산기슭 아래에는 평평한 경작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돌로 쌓은 건물의 기초가 발견되었다. 병사 주둔지 또는 지휘소로 추정된다.

현황

2013년 현재,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관애 중앙에는 관애의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간구자하(干溝子河) 좌우의 성벽도 거의 유실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북구 관애는 혼강 지류인 누하 유역의 험준한 간구자 협곡에 위치했는데, 이곳에서 협곡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면 고구려 두 번째 도성이 위치했던 집안 경내에 도달하게 된다. 북구 관애는 서쪽의 혼강 유역에서 집안 지역으로 진격하는 적군을 방어하기 위해 관애를 축조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관애의 남북 산중턱의 절벽을 천연 성벽으로 활용하면서 절벽의 동단에서부터 인공 성벽으로 축조했는데, 이것 역시 관애 서쪽이 관애의 외곽임을 시사한다. 이로 보아 북구 관애고구려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한 방어선으로 추정된다.

현재 집안시 경내에서는 관마 산성을 비롯하여 칠개정자 관애, 노변장 관애, 대천 초소, 망파령 관애, 석호 관애 등의 방어 시설이 발견되고 있는데, 북구 관애는 특히 성장립자 산성이나 와방구 산성 등과 함께 환인 지역에서 혼강 하류 방면을 경유하여 집안 경내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이들 산성과 함께 혼강 하류 일대에서 도성 외곽의 방어선을 구성하였다고 파악되며, 환인 분지로 향하는 적군을 방어하는 기능도 겸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 編纂委員會,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1990)
  • 梁志龍, 「桓仁地區高句麗城址槪述」(『博物館硏究』1992-1, 1992)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哈爾濱出版社, 1994)
  • 余昊奎, 『高句麗 城』I(國防軍史硏究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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