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力墓子 古墳群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연강향 고력묘자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군 |
|---|---|
| 양식 | 적석묘|봉토묘 |
| 크기 | 남북 1㎞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6년 4~5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8년 10~11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9년 3~5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4년 7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6~7월 |
| 훼손 시기/일시 | 1970년대 초 |
| 소재지 |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연강향 고력묘자촌 |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고력묘자촌(高力墓子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고력묘자 고분군은 본래 중국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연강향 고력묘자촌 남쪽의 언덕에 위치했었는데, 환인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언덕 아래 계곡으로 작은 내가 서쪽으로 흘러 혼강(渾江)으로 들어갔으며, 언덕 서북쪽 1㎞ 거리에 고려묘자촌이 있었다. 서북쪽 5㎞에 고구려 건국지로 비정되는 오녀 산성(五女山城)이 위치해 있고, 서쪽 약 15㎞ 거리에 환인현 소재지가 위치해 있다.
1956년 4~5월에 환인댐 수몰 지구에 대한 고고 조사의 일환으로 분포 현황을 조사하여 240여 기를 확인하였다. 특히 고분군 남쪽 언덕에 대형 적석묘 70~80기가 밀집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 가운데 7기를 발굴하였다. 1958년 10~11월과 1959년 3~5월에는 2년에 걸쳐 29기를 발굴하였다. 1964년 7월에는 북한과 중국의 합동 조사대가 고분군의 전반적인 현황을 조사하였다. 1994년 6~7월에 환인댐의 수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수몰되지 않은 연접묘 4기를 발굴하였다.
고력묘자 고분군은 지금은 환인댐에 수몰되었지만, 본래 고력묘자촌 남쪽의 언덕에서 산기슭을 따라 마을까지 분포해 있었다. 고분군은 남북 1㎞에 걸쳐 분포해 있었으며, 지세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았다. 가장 남쪽의 언덕에는 대형 적석묘 70~80여 기가 4줄로 열을 이루며 연접하며 분포하였는데, 그 길이가 70여 m에 달했다. 고분의 형식은 크게 적석묘와 봉토묘로 나뉘는데, 거의 대부분 적석묘이며, 봉토묘는 소수에 불과하다. 적석묘의 형식은 원구상(圓丘狀)의 무기단(無基壇) 적석묘, 방구상(方丘狀)의 기단 적석묘(基壇積石墓), 층단을 이룬 계단 적석묘(階段積石墓) 등으로 나뉘며, 봉토묘는 규모가 작은 봉토 동실묘(封土洞室墓)와 보통 크기의 봉토 석실묘로 나뉜다.
1950년대에 발굴한 30여 기 가운데 11호분[길이 12m, 너비 12m]과 15호분[길이 17.5m, 너비 13m]은 계단 적석묘, 1호분[길이 6m, 너비 5m]은 기단 석실 적석묘, 21호분[길이 10m, 너비 8m]은 계단 석실 적석묘, 8호분[길이 4.5m, 너비 3.7m]과 12호분[길이 3·8m, 너비 2m]은 봉토 석실묘였다. 그리고 1994년에 4기의 연접묘를 발굴하였는데, 단1~단3으로 명명된 3기의 연접묘는 연이어진 길이가 34m에 이르는데, 각 묘단에는 1~4기의 묘광을 조성하였다. 고력묘자 적석묘에서는 거의 대부분 화장(火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력묘자 고분군에서는 화장의 흔적이 남은 인골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44기의 고분 가운데 24기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 특히 1950년대 발굴에서는 적석묘에서 토기, 철제 고리칼[鐵刀], 철제 띠고리[鐵帶卡], 철제 재갈[鐵馬銜], 철제 화살촉[鐵鏃], 철제 창[鐵矛], 철제 패옥형 노리개[璜形鐵佩], 은제 팔찌[銀鐲], 동제 팔지[銅鐲], 금·은·구리 장식 잔편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1994년 발굴에서는 단지와 항아리 등의 토기, 철제 고리와 낚시 등이 출토되었다.
고력묘자 고분군은 고구려 건국의 중심지로 알려진 혼강 유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구려 고분군이다. 더욱이 고분군 서북쪽에는 고구려의 건국지로 비정되는 오녀 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많은 연구자들이 고력묘자 고분군을 고구려의 건국과 연관시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고력묘자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나 철기류를 고구려 초기로 편년하고, 고분군이 처음 조영된 시기를 고구려 건국 초기인 서기 1세기 또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로 파악하기도 한다. 다만 석실 매장부도 있으므로 조영시기를 고구려 초기로 한정지을 수 없고, 특히 2, 8,11, 12, 21호분 등은 4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되어 동일한 시기에 조영되었다고도 하기 어렵다. 고력묘자 고분군에서는 조영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으므로, 향후 더욱 정밀한 고고 조사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