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米倉溝 古墳群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중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조선족향 미창구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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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 | 흙무지 돌방무덤 등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4년 4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7년 4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1년 9월~11월 |
| 훼손 시기/일시 | 1854년 |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89년 |
| 소재지 | 중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향 미창구촌 |
중국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아하향(雅河鄕) 미창구촌(米倉溝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미창구 고분군은 벽화 고분과 중소형 흙무지 돌방무덤[봉토 석실묘(封土石室墓)]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구려 발상지인 혼강(渾江) 유역의 환인 분지 남쪽에 위치해 있다. 강변의 평탄한 산등성이에 대형 벽화 고분인 미창구 1호분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분포하고 있다. 미창구 1호분은 널길, 곁방, 이음길, 널방 등으로 이루어진 흙무지 돌방무덤으로 무덤 내부에는 연꽃무늬, ‘왕(王)’자 무늬, 용무늬 등의 벽화를 가득 그렸다. 5세기 초를 전후하여 조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미창구 고분군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향 미창구촌 북쪽의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다. 산등성이는 완만하고 평탄한 편인데, 압록강(鴨綠江) 지류인 혼강이 서북 방향에서 흘러와 언덕을 반쯤 휘감아 돌아 서남으로 흘러가고 있다. 북쪽 10㎞ 거리에 환인현 소재지가 있고, 동북쪽 16㎞ 거리에 고구려 건국지로 비정되는 환인오녀 산성(五女山城)이 위치해 있다.
1854년에 일명 장군묘(將軍墓)로 알려진 미창구 1호분이 도굴당했는데, 『환인현지(桓仁縣志)』에 그 현황이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1984년과 1987년에 전체 현황이 조사되었고, 1991년 9~11월에는 요령성 문물 고고 연구소가 본계시 박물관 및 환인현 문물관리소와 함께 벽화 고분인 미창구 1호분[장군묘]을 발굴하고, 주변의 소형 흙무지무덤[봉토묘] 10여 기도 발굴하였다. 이를 통해 미창구 1호분에 그려진 벽화의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그 주변에 산재한 소형 흙무지무덤의 현황과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다수 확보하였다.
산등성이의 중앙 부분에는 ‘장군묘’라 불리는 대형 흙무지 돌방무덤인 미창구 1호분이 위치하며, 이를 중심으로 약 500m 범위 안에 10여 기의 흙무지 돌방무덤이 방사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들 중소형 흙무지 돌방무덤은 대체로 2기씩 짝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고, 둥근 언덕 모양[圓丘狀]으로 직경은 12~18m, 높이는 1~1.5m 전후이다. 내부 구조는 옆트기식[횡혈식] 석실로서 무덤 바깥길[묘도]과 무덤칸[묘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덤 바깥길은 무덤칸 중앙에 위치한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무덤칸의 형태는 정방형, 장방형, 횡장방형 등으로 나뉘며, 벽면에 백회를 바른 흔적이 남은 경우가 많다.
환인 미창구 고분군의 중심에 위치한 미창구 1호분은 일명 장군묘라 불리며 일찍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흙무지 돌방무덤으로서 외형은 위쪽이 평평하고 네모진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이며, 동서 길이 45m, 남북 너비 41m, 전체 둘레 170m, 높이 7.2m이다. 널길과 두 개의 곁방, 이음길, 널방으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널길과 널방 등은 잘 다음은 석재로 쌓았으며, 널방의 천정은 4단의 평행 고임으로 마감하였다. 널방의 평면은 정방형으로 한 변의 길이 3.56m이며, 바닥에 판석을 깔고 좌우 양측에 각기 1개씩 관대를 놓았다. 네 벽 위쪽에는 0.5m 간격으로 일정하게 못구멍을 뚫었는데, 만장을 걸기 위한 못자리로 파악된다. 곁방과 널방의 벽면과 천장에는 백회를 칠하고 벽화를 그렸다. 벽과 천정 고임부가 만나는 곳에 들보를 그려 목조건물을 재현했으며, 벽면과 천정에는 연꽃무늬, ‘왕(王)’자 무늬, 용무늬 등을 가득 그렸다. 특히 널방의 네 벽에는 같은 모양의 연꽃무늬를 일정 간격으로 연속하여 그렸는데 모두 213송이에 이른다. 널방의 천장 및 좌우 곁방의 벽과 천장에는 ‘왕’자 무늬를 가득 그렸다.
미창구 고분군의 출토 유물은 대부분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종류별로 분류하면 시유 도기[釉陶器] 4건, 금동기류 11건[띠고리 2건, 운주 2건, 관장식 2건, 단추장식 1건, 장식 2건, 장조형 장식 1건, 비녀 1건], 동기 4건[장식 1건, 단추 장식 1건, 못 2건], 금기류(金器類) 2건[요엽(搖葉) 1건, 단추 장식 1건], 철기 7건[칼 1건, 삽 1건, 송곳 1건, 등잔 1건, 못 1건, 꺾쇠 1건], 화형석(靴形石) 1건, 목제 안장편(木馬鞍橋殘塊) 1건, 회색토기 대상파수[灰陶橋狀耳] 1건 등이다. 금제와 금동제 장식품이 다수 출토된 것이 특징적이다.
미창구 고분군은 고구려 첫 번째 도성이었던 환인 분지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특히 고분군의 중심에 위치한 미창구 1호분은 대형 흙무지 돌방무덤으로서 환인 지역에서는 처음 확인된 벽화 고분이며, 그 제재도 다른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문양의 연꽃, ‘왕(王)’자, 용무늬 도안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고분의 조성 연대는 연꽃이 주요한 제재를 이룬다는 점에서 불교가 전래된 이후인 4세기 후반에서 5세초 초 또는 5세기 전반으로 비정된다. 고분의 피장자(被葬者)를 고구려 시조인 주몽(朱蒙)이나 제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