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자 고분군

한자 二道河子 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중국 길림성 임강시 위사하향 사도하자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흙무지 돌방무덤
조성 시기/일시 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4년 5월
소재지 중국 길림성 임강시 위사하향 사도하자촌
정의

중국 길림성(吉林省) 임강시(臨江市) 위사하향(葦沙河鄕) 사도하자촌(四道河子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위치

이도하자 고분군은 중국 길림성 임강시 위사하향 사도하자촌 이도하자(二道河子) 부근 골짜기 양안의 산기슭에 있다. 고분군이 있는 골짜기의 너비는 150m 남짓하며, 위사하(葦沙河) 바닥보다 1~3m 정도 높게 모래 평지가 펼쳐져 있다.

위사하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되는데, 이도하자를 지나가면서 S자형의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다시 남쪽으로 급하게 흐르면서 골짜기 양안을 침식시켜, 15㎞의 골짜기를 형성하였다. 위사하 양측의 지형은 모래 평지이기 때문에 비옥한 대지라고 볼 수 없다. 남쪽으로 약 3㎞ 떨어진 지점에는 위사하향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4년 5월 하순 혼강시 문물보사대(文物普査隊)가 위사하향을 조사할 때, 지역 주민들이 고분군에 대해 말해주면서 확인되었는데, 당시에는 4기의 고분이 있었다.

형태

1984년 조사 때 확인된 4기의 고분은 위사하의 왼쪽에 한 기, 오른쪽에 3기가 있었다. 고분의 유형은 모두 흙무지 돌방무덤[봉토 석실분]이다. 위사하의 오른쪽에 있는 고분 가운데 한 기는 장대석으로 쌓은 2층 담[墻]만 남아 있는데, 길이는 1m를 넘지 않는다. M1은 지역 주민들이 ‘고려한요(高麗旱窯)’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위사하 동쪽 약 10m 지점에 있다. 직경은 4m, 높이는 1.8~2m, 방향은 235°이다. M1은 널길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무덤칸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무덤칸은 원형이고, 지표 위에 축조하였으며, 바닥에는 진흙이 쌓여 있었다. 직경은 2m, 높이는 1.9m이다. 무덤칸은 자연석을 층층이 쌓아 올려 축조하였는데, 1m 이상에 이르면 점차 안으로 들여쌓아 19층 정도에서 3층의 말각 조정 구조를 이루고, 3개의 짧은 돌로 천정을 덮었다. 천정은 활처럼 높고 길게 굽은 궁륭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 널길은 길이 0.55m, 너비 0.5m, 높이 0.6m이다. 문미석은 길이 0.64m, 너비 0.23m이다. 나머지 고분들은 봉토가 낮고, 무덤칸이 작다.

출토 유물

이도하자 고분군 부근 경작지에서 불에 태워진 돌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현황

이도하자 고분군은 2013년 현재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도하자 고분군 중 M1은 지표 위에 축조되었고, 천정은 궁륭식이며, 천정 부근에 말각 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축조 방법은 고구려 초기 흙무지 돌방무덤과 유사하다. 다만 축조 수준이 떨어지고, 벽에 백회를 바르지 않았으며, 널길이 좁고, 이실(耳室)[움푹 들어간 아치형 공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시대가 약간 늦은 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고분군 부근 경작지에서 많은 용석(熔石)과 불에 태워진 돌 조각 등이 출토되었고, 용로지(熔爐址) 두 곳이 발견되었다. 또한 지역 주민의 말에 의하면, 위사하 서쪽 골짜기 언덕에 인철광(磷鐵礦)이 있는데, 최근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이도하자 고분군은 용철지(熔鐵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도하자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사하향 금란점(金鑾店) 유적이 있는데, 고구려와 발해 시대의 토기편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두 유적 간의 관련 여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 編修委員會, 『渾江市文物志』(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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