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발자 고분군

한자 萬發拔子 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중국 길림성 통화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문물|보호단위등급 중국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
조성 시기/일시 청동기-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0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1999년
문물 지정 일시 1961년
문물 지정 일시 2001년 6월
소재지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금창진(金敞鎭) 동창구(東昌區) 약진촌(躍進村)과 강남촌(江南村)의 경계 지점
정의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에 있는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고구려 시대에 걸쳐 조성된 고분군.

개설

통화 만발발자 고분군은 혼강(渾江) 남안의 산기슭과 언덕에 자리잡은 복합 유적의 일부이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세형동검문화 요소와 고구려 초기 고분인 무기단적석묘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유적으로 고조선 멸망 후의 문화변동, 고구려의 국가성립, 고구려 문화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적은 동쪽의 산능선과 서쪽의 언덕에 분포하는데, 주로 산능선에는 고분이, 언덕에는 생활 유적이 분포한다. 고분은 총 56기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의 무덤을 비롯하여 고구려 시대의 무기단적석묘(無基壇積石墓)과 계단적석묘(階段積石墓)이 있다. 고구려 초기 문화층에서는 대석개적석묘(大石蓋積石墓)과 무기단적석묘가 함께 확인되었는데, 고구려 초기 적석묘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위치

만발발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통화시 남쪽의 혼강(渾江) 남안의 언덕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창진(金廠鎭) 약진촌(躍進村)과 환통향(環通鄕) 강남촌(江南村)의 경계 지점에 해당한다. 지리 좌표는 북위 41°40′∼41°41′, 동경 125°56′∼126°06′인데, 북쪽 3㎞ 거리에 통화시가 위치하며, 서쪽 0.5㎞에 혼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56년 이래 길림성 문화국과 통화시 문물조사대에서 여러 차례 지표 조사를 시행하고, 유물을 수집하였다.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가 1987년에 1차 발굴 조사를 했고, 2차는 같은 기관이 통화시 문물관리위원회 및 집안시 박물관과 함께 1997년 4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3년간 6,457㎡에 달하는 규모의 유적조사를 진행하였다. 유적에서는 신석기에서 명대(明代)에 이르는 6개의 문화층을 확인하였는데, 1기 신석기시대 문화층, 1기 청동기시대 조기(만상(晩商)~서주(西周)시기) 문화층, 3기 청동기시대 만기(춘추전국시대) 문화층, 4기 기원전 2세기~기원 전후(서한~양한(兩漢) 교체기) 문화층, 5기 기원후 3~5세기(위진시대) 문화층, 6기 명대(明代) 문화층이다.

이 중 5기로 편년된 문화층은 전형적인 고구려 묘지와 토기 등이 포함된 고구려 문화층에 해당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초기 철기 시대와 고구려 시대 유적이 중심을 이룬다. 생활유구로는 주거지 20기, 재구덩이 137기, 도랑 유구 9기, 환호(環濠) 1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토광묘 21기, 석관묘 11기, 석곽석관묘 1기, 대개석묘(혹은 대석개묘) 4기, 대개석적석묘(혹은 대석개적석묘) 2기, 무기단석광적석묘 1기, 방단적석묘 1기가 확인되었다. 고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대개석적석묘와 고구려 초기에 해당되는 무기단석광적석묘 및 방단적석묘가 같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만발발자 유적은 생활 유적과 고분이 병존하는 복합 유적으로 1999년 중국 10대 발굴로 선정되었고, 2001년에는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2019년 9월 종합보고서가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와 통화시 문물관리실에 의해 발간되었다.

유적의 현황

만발발자 유적은 혼강 우안 약 1.5km 거리에 있다. 동쪽에서 서남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산능선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지형이 목을 빼고 엎드려 있는 거북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주민들이 왕팔발자(王八脖子)라고 불렸다. 이 때문에 처음에 왕팔발자 유적으로 알려졌다. 1996년에 중국국가문물국이 고고유적 항목을 비준할 당시 만발발자 유적으로 이름을 고쳤다. 통화-집안 간 구도로를 기준으로 동쪽 산능선에는 주로 고분이 분포하며, 서쪽 언덕에는 신석기 시대 이래의 생활 유적이 분포한다. 특히 서쪽 언덕에서 고구려 초기의 환호 취락이 확인되었고, 고구려 중기에는 온돌을 갖춘 지상 건물을 조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분은 토광묘, 토광석곽묘, 토광석관묘, 대석개묘, 대석개 돌무지무덤, 무기단 돌무지무덤, 계단 돌무지무덤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토광묘, 토광석곽묘, 토광석관묘 등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단인장(單人葬)도 있지만, 다인 합장묘로 화장을 한 것이 많다. 21호 토광묘는 35구의 사람 뼈를 합장하였다.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의 일종인 대석개묘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무덤이다.

만발발자 유적에서 주목해야할 문화층은 초기 철기시대와 기원 전후한 시기에 해당하는 3기와 4기 문화층이다. 이곳에서 고조선의 물질문화로 보이는 대개석묘, 초기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등과 고구려 적석총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무기단 석광적석묘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도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가 형성되기 이전 단계에 해당한다.

3기 문화층에서는 주거지, 토광묘, 석관묘, 대개석묘, 수혈, 도랑과 다량의 유물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11기가 확인되었는데 내부에서 대부분 토기와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일부 회갱에서 점치는 복골(卜骨)과 돼지나 개 등 동물 모양 토제품, 사람 얼굴 모양을 형상화한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33기가 조사되었는데 토광묘 21기, 석관묘 8기, 대개석묘 4기이다. 이중 토광묘인 M21은 35구의 인골을 합장한 집장토광묘이다.

4기 문화층에서는 주거지 3기, 수혈 17기, 도랑 2기, 무덤 7기가 확인되었고,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석관묘 3기, 석곽석관묘 1기, 대개석적석묘 2기, 무기단방단적석묘 1기이다. 앞 시기에 비해 크기가 커지고 적석 형태의 석묘로 바뀌었다.

더불어 주목되는 점은 고구려 초기 문화층에서 대석개 돌무지무덤과 무기단 돌무지무덤이 함께 확인된 것인데,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의 기원과 관련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또한 고구려 중기 문화층에서는 계단 돌무지무덤이 확인되었는데, 29호분의 계단은 3층으로 길이 2.75m, 너비 2.35m이다.

출토 유물

통화 만발발자 유적에서는 일찍이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토기편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1997~1999년의 발굴에서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심발형 토기, 굽접시, 네 귀 달린 항아리 등의 다양한 토기, 석제 괭이, 갈돌, 돌도끼, 반달돌칼, 돌칼, 석제와 토제의 어망추, 돌창, 돌화살촉, 뼈송곳, 뼈화살촉 등의 도구와 무기, 구슬, 석제 고리, 패옥, 이빨 장식, 조개 고리 등의 장신구, 복골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만발발자 유적은 신석기 시대에서 명대에 이르는 장시간에 걸쳐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고구려 건국 직전인 청동기 후기에서 고구려 초기, 고구려 중기에 이르는 3개의 문화층이 일련의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 후기 문화층에서 확인된 대석개묘와 고구려 초기 문화층에서 확인된 대석개 돌무지무덤과 무기단 돌무지무덤은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고구려 초기 문화층의 환호 취락은 고구려 건국 전후 이 지역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만발발자 유적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문화적 계승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원전 4세기~기원 전후로 편년되는 3, 4기 문화층에서 발견된 유구와 유물들은 고조선과 국가 형성 이전 고구려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고인돌,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등은 고조선 문화와 연결되며 적석묘와 네 귀 달린 토기 등은 고구려와 연결된다. 주거지에 설치된 초기 형태의 구들은 고조선 후기 유적인 중국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의 연화보(蓮花堡) 유적과 연결되며, 고구려 주거시설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적석시설을 한 고인돌과 무기단석광적석묘 등 다양한 묘제와 화장 등의 장례 습속도 고조선과 초기 고구려의 문화적 관련성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 編纂委員會 主編, 『通化縣文物志』(1986)
  • 吉林省地方志 編纂委員會, 『吉林省志』43(文物志)(1991)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通化市文物管理協公室, 「通化市王八脖子遺址及附近幾處地點的調査與發掘」(『博物館硏究』1997-2, 1997)
  • 國家文物國 主編, 「吉林通化萬發撥子遺址」(『1999中國重要考古發現』, 文物出版社, 2001)
  • 王綿厚, 「通化萬發撥子遺址的考古與民族學觀察」(『北方文物』2001-3, 2001)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通化市文物管理委員會辦公室, 「吉林通化市萬發拔子遺址二十一號墓的發掘」( 『考古』 2003-8, 2003)
  • 오강원, 「萬發拔子를 통하여 본 통화 지역 先原史文化의 展開와 初期 高句麗文化의 形成過程」( 『북방사 논총』 1, 2004)
  • 朱泓·賈瑩·金旭東·趙展坤, 「通化萬發拔子遺址春秋戰國時期叢葬墓顱骨的觀察與測量」( 『邊疆考古硏究』 2004-3, 2004)
  • 湯卓煒·金旭東·楊立新, 「吉林通化萬發撥子遺址地學環境考古硏究」( 『邊疆考古硏究』2, 科學出版社, 2004)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通化市文物管理委員會辦公室, 「通化萬發撥子遺址考古發掘報告」( 科學出版社, 2019)
  • 이종수, 「고구려 문화 기원의 보고-통화 만발발자 유지 고고발굴보고」( 『야외고고학』 37, 한국문화유산협회, 2020)
  • 하문식, 「초기 고구려의 기층문화 연구③: 通化 萬發撥子 유적의 무덤」( 『東洋學』 81, 2021)
  • 박선미 편, 『길림성 통화 만발발자 유적, 고조선과 고구려의 만남』( 동북아역사재단, 2021)
  • 여호규·강현숙·백종오·김종은·이경미·정동민,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Ⅲ 압록강 중상류3 통화-백산·임강-장백』( 동북아역사재단, 2022)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