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중·러·한·북 간 무역의 교두보, 목단강 지구의 통상구들(밀산, 동녕, 수분하 통상구)

한자 中·露·韓·北 間 貿易의 橋頭堡, 牧丹江 地區의 通商區들(密山, 東寧, 綏芬河 通商區)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흑룡강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지역 목단강 지역 통상의 중심지
정의

통상구는 중국에서 통상 구안이라고 부른다. 사전을 보면 “서양 열강들은 전쟁 등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청 정부에게 연해 및 변경 도시를 통상 구안으로 개방할 수 있게금 만드는 일종의 침략 방식이다.”

중국의 통상 구안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기타 국가와의 협의나 계약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하는 통상 구안이며 또 하나는 자체적으로 개방된 통상 구안이다.

중국 북쪽 지역의 심천(深圳), 수분하시(綏芬河市)

수분하시는 중국흑룡강성 동남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동쪽은 러시아와 연결하고 있고 국경선의 길이는 27.5㎞가 되며 총 면적은 460㎢이다. 수분하시는 수분하진[綏芬河鎭], 부녕진[阜寧鎭), 호시 무역구(互市貿易區) 및 변경 경제 합작구[邊境經濟合作區] 등 4개 행정 지역으로 구성되어있다.

현재의 상주 인구는 총 10만명 정도이고 1975년부터 중국 국무원의 허가를 얻어 계획 단열시[計劃單列市]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 중국의 첫 번째 국경 개방 도시로 선정되어 1997년에 중국과 러시아 간의 무역 구역을 설립했다.

수분하시는 동북아 경제의 핵심 지역에 처하고 있다. 여기서 러시아까지는 하나의 철도와 두 개의 고속도로가 마련했고 매일 여러 차례의 열차와 버스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왕래하고 있다. 수분하시의 통상구를 통해 러시아를 걸쳐 일본, 한국, 미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와 지역까지 도착할 수 있고 중국 동북 지역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통상구안 중의 하나이다.

"수분(綏芬)"은 만족어이고 만족언어에서는 "송곳"의 뜻이다. 수분하에서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모양으로 생긴 옹코멜라니아가 있기 때문에 이 강을 "수분하"라고 불렀다.

수분하는 긴 역사를 가진 강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분하시에서 끊임없이 여러 곳의 고대 문화 유적지를 발굴했는데 출토된 석기에 대한 감정을 따르면 4000여 년전의 물건인 것을 밝혔다. 고고학자와 역사학자의 연구를 통해 이 유적들의 주인은 바로 흑룡강 유역에서 살았던 숙신인[肅慎人]이며 즉 중국 만족 민족의 선조이다. 청나라가 건국한 후에 조상의 발원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현 수분하 지역을 출입금지지역으로 설정한 적도 있었다.

1858년 청나라 정부가 러시아와 『아이훈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내용을 따라 흑룡강 북쪽 60여 만㎢의 구역의 관리권을 러시아가 갖게 되었다. 이어서 1860년, 러시아가 『중러 북경 조약』을 통해 중국우수리강 동쪽 40여 만㎢의 중국 영토를 갖게 된 후에 수분하 지역은 러시아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중국인이 중국 국내로 이전하기 시작했는데 일부 사람들은 현 수분하시 건화촌[建華村] 일대에서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 주민들은 바로 현대 수분하지역의 첫 번째 주민들이다.

1895년, 제정 러시아가 청나라 정부에게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청나라 정부가 관할하는 땅으로 연장하자는 제의를 했다. 즉 중국 동북 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까지의 철도를 연결하는 제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 제안이 1986년 6월에 『중러 밀약』의 맺음으로 이루어졌는데 1989년부터 철도 공사가 시작했고 1903년에 중동 철도가 개통했다.

이 철도가 개통한 후에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얼빈시는 모두 비약적인 발전을 얻었다. 당시의 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시작하여 수분하역은 다섯 번째 기차역이었기 때문에 역사에서 다섯 번째 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초의 계획으로 따르면 다섯 번째 역은 동녕현(東寧縣)에서 설립했어야 하는데 지질 구조 때문에 동녕현과 50㎞거리가 있는 작은 산비탈에서 설치된 것이었다. 이 산비탈이 있는 곳은 바로 오늘날의 수분하시이며 즉 하나의 양국 경계선에 있는 기차역의 설립으로 국경선에서 백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를 만들어진 것이다.

1903년, 중동 철도가 개통한 후에 수분하 지역은 하얼빈을 이어 엄청난 발전을 맞이한 지역이 되었다. 그때 러시아일본, 영국,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 등 18개 국가의 상인과 대사들이 이 지역에서 모았다. 이를 따라 유럽의 상품, 문화 및 건축 등도 이곳으로 유치된 것이다. 한 동안 18개 국가의 국기가 여기서 휘날렸기 때문에 “기진(旗鎭)”이라고 불렀기도 했다. 경제의 발전에 따라 수분하 지역은 또한 중국 동북 지역에서 최초로 기차를 개통하고 전등과 전화를 갖게 된 지역이 되었다.

1933년, 일본군이 수분하 지역을 침략한 후에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중동 철도가 중단되어 수분하 지역의 경제도 불황기가 되어가자 인구수도 대폭 줄었다.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이어왔다. 1949년부터 이은 10여 년 동안에 수분하 지역은 지속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양국 화물 교류의 수출입 및 운송 역할을 수행해왔다. 20세기 60년대와 70년대에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적인 관계로 양국의 무역 왕래가 정체가 되어 수분하 지역의 다리 역할은 많이 약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점차 개선되면서 양국의 경제 무역은 새로운 계기를 맞이했다. 1984년과 1985년에 양국은 “경제와 과학 기술 합작 협정” 및 “무역과 지불 협정(1986~1990)” 등 협의를 맺었다. 이에 따라 흑룡강성 정부가 수분하시를 1988년에 변경 무역 시범 구역으로 지정했다.

21세기 들어온 후에 흑룡강성 정부는 러시아와의 무역 및 기술적 교류와 합작을 지역 발전의 주요 전략을 세운 다음에 “수분하 지역을 중국 북쪽의 심천으로 만들어 수분하 지역의 역할을 강화해야한다”는 제의를 했다.

국경 무역 외에는 관광산업도 오늘날의 수분하시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요산업이다. 1990년부터 시작한 수분하시의 관광 산업은 주로 변경 관광을 핵심 컨셉으로 잡고 있다. 해외는 주로 러시아와 연결하여 출국하려고 하는 여행자는 여기서 신청을 하면 12시간 내에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다. 국내선은 하얼빈을 걸쳐 대련, 북경, 상해 그리고 광주 등 지역까지 모두 도착할 수 있는 교통편을 마련하고 있다. 현지의 국제여행사는 5개가 있고 숙박시설은 총 150여 개가 있다.

이국적인 건축물은 수분하시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수분하 기차역 대합실, 중동철도를 건축했을 때엔 러시아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했던 “대백루(大白樓)”, 현재 수분하 우체국 사무실 건물로 활용하고 있는 수분하러시아 영사관 건물, 그리고 동정 성당 옛 주소 등 건물들은 대표적인 것이다. 이외에는 수분하 국가 산림 공원 스키장과 수분하 박물관도 현지에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아름다운 흑룡강성의 “작은 강남”, 동녕현

동녕(東寧)현은 흑룡성성 목단강 동남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영고탑(寧古塔)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녕이란 이름을 얻었다. 평안한 기후,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풍부한 특산물로 유명하기 때문에 동녕현은 또한 흑룡강성의 “작은 강남”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동녕현은 현재 총 6개 진을 가진 행정구역이며 청나라 말기부터 설립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국와 러시아의 변경에 처하고 있다. 남쪽과 서남쪽은 길림성 훈춘시(琿春市)와 왕청현(汪淸縣)과 연결하고 있고 서쪽과 북쪽은 목릉현(穆棱縣)과 연결하고 있다. 총면적은 7,529㎢이며 연결된 국경선의 길이는 179㎞이 된다. 동녕현의 북쪽, 서쪽과 남쪽은 모두 해발 500m 이상의 산지이며 지모, 토지, 그리고 기후 등은 뚜렷한 과도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동녕현에는 매우 풍부한 자연 자원을 갖고 있다. 산림 복개율은 약 82.3%이며 70여 가지의 목재자원과 탄광, 황금, 석묵 등 다양한 광산자원을 갖고 있다. 주요 광산자원은 금, 은, 동, 납, 황철광, 토탄, 석탄, 대리암 그리고 석영 등 자원들이 있다.

동녕 통상구는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장 가까운 육지 통상구이며 러시아 대륙과 철도 및 도로로 연결하고 있는 통상구 뿐문 아니라 또한 중러간에 가장 좋은 해운 노선을 갖고 있다.

동녕현 통상구는 1989년 12월에 중국 정부가 승인한 1급 통상구가 되었다. 1990년 3월, 중국과 러시아 양국 정부의 공식인증을 얻어 동녕현의 고속도로 통상구 역할을 같은 해 5월부터 실행하기 시작했다. 1991년 1월부터 승객 운송의 자격을 얻었고 2006년 6월부터 착륙 비자 수행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2009년 4월부터 다른 지역에서 비자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2011년 2월, 동녕 통상구는 양식, 석유 등 대규모 화물 컨테이너 국제무역 시범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동녕현 통상구가 개방되니 초기에 길이 32m, 넓이 4.5m, 하종 30톤의 임시용 다리를 만들었다. 1993년에 중국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길이 45m, 넓이 9m, 하종 600톤의 운송용 다리를 건축했다. 같은 해 11㎞의 통상구 도로를 시공했고 종합사무실, 화물검사통로 및 출입국 통로등을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6월, 동녕현정부와 흑룡강성 교통청 함께 동녕현 통상구 확대사업을 실시했고 출입국 통로를 6개로 늘었고 화물검사 통로 하나를 추가했다.

중국 “만리장성”을 통한 통상구, 밀산 통상구

밀산 통상구는 1988년에 중국 정부가 허가한 승객과 화물을 모두 운영할 수 있는 육지 통상구이다. 1992년 4월부터 정기적으로 오픈해왔다. 밀산 통상구는 중국과 러시아간에 주요 민간 무역 통상구이다.

18세기 말기부터 밀산 지역의 주민들이 이미 러시아 상인들과 민간 거래를 진행해왔다. 1930년부터 민간 교류가 매우 빈번해지기 시작했지만 1939년 일본군이 밀신지역을 침략한 후부터 양쪽이 무역 교류가 한동안 중단이 되었다. 1945년, 동북지역이 해방된 다음에 1946년에 다시 밀산 지역의 변경 통상역할을 회복했다. 그러나 1947년에 화물 무역은 모두 수분하 통상구가 통일 처리하도록 변경했고 밀산 통상구가 1991년에 다시 활성화가 되었다.

1991년에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같이 준비 도로 공사 및 다리 공사 등 사전 준비 공사를 실시했고 1992년 4월에 밀산 통상구는 먼저 화물 교류를 회복했다. 1993년, 통상구의 기초 시설들이 모두 준공한 후에 같은 해 6월 10일부터 공식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밀산시 통상구는 중국만리장성의 모양으로 건축했고 중국 동북지역 변경에 있는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밀산 통상구에 있는 또 다른 상징물은 바로 “백릉강 다리”이다. 백릉강 다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경선 다리”이다. 이 다리의 길이는 불과 10m이며 넓이는 세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 출발한 부분은 철교이며 러시아에서 출발한 부분은 원래는 목재였지만 현재는 돌다리로 개축했다. 다리 가운데에 있는 10여㎝의 갈라진 틈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선이다. 세계 다리 중에서 유일한 이 국경선 다리는 1992년 통상구 다리의 준공으로 더 이상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왔고 하나의 관광지로 만들었다.

참고문헌
  • Robert Nield·이소, 『중국 통상 구안: 무역과 최초의 조약항(中国通商口岸:贸易与最早的条约港)』(동방 출판사, 2010)
  • 중국 국가 지리 지도 편찬 위원회, 『중국 국가 지리 지도(213판)』중국 대백과 전선 출판사, 2010
  • 바이두 백과
  • http://baike.baidu.com/link?url=jMscPNzELx6SP63qDZFTK9EjEQMGvbV1IRN-giSj8jVx4MKqZrHzwHr7rvH-FxRo
  • 중문 백과(http://www.zwbk.org/MyLemmaShow.aspx?lid=102489)
  • 흑룡강성 상무청(http://www.hljswt.gov.cn/kajs/4326.jhtml)
  • 밀산시(http://www.hljms.gov.cn)
  • 수분하시(http://www.suifenhe.gov.cn)
  • 수분하시 정보 (http://www.157300.net)
  • 동녕현(http://www.dongning.gov.c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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