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 유격대

한자 饒河 遊擊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쌍압산시 요하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항일 무장 투쟁 단체
설립자 최용건(崔庸健)
설립 시기/일시 1933년 4월
개칭 시기/일시 1935년 9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3년 6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3년 12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2월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요하현
정의

흑룡강성 요하현(饒河縣)에서 1933년 4월 조직된 중국 공산당 요하현위원회 산하의 항일 유격대.

개설

1930년대 초반 흑룡강성 요하현에는 불과 2천~3천명 내외의 한인(韓人)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하현의 한인들은 항일무장 투쟁의 선봉에 서서 요하 유격대 창건의 토대를 닦았다.

1932년 봄 중국 공산당 요하중심현위원회(饒河中心縣委員會) 책임자인 박진우(朴振宇)는 대중조직인 반일회를 조직하였다. 그는 반일회원들이 생산현장을 지키도록 하는 한편, 유격대를 건립하기 위해 무기를 탈취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1932년 10월 최용건 등 한인 10여 명이 ‘특무대(特務隊)’를 조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특무대는 반일회원 40여 명을 대원으로 확보하여 1933년 4월 요하 노농 의용군(饒河 勞農 義勇軍, 일명 饒河 工農兵 義勇軍)을 결성하였다. 이 때 대장은 최용건, 정치부주임은 김문형(金文亨)이 맡았다. 이후 70여 명의 한인(韓人)들이 ‘군정 훈련반’을 거쳐 항일유격대에 참가하였다. 한때 이 부대는 ‘조선 혁명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1934년에는 ‘민족 연합 반일 유격대’라는 이름으로 민족연합 투쟁을 위한 선전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요하 노농 의용군은 1933년 6월 고우산(高宇山)이 지휘하는 중국 의용군인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旅)에 직속하는 특무영으로 편성되어 무기와 군수물자의 보급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때 김문형(金文亨)을 영장, 최용건(崔庸健)을 참모장으로 하고, 박진우(朴振宇)가 정치부 부주임을 맡았다. 이후 이 부대는 구국군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표적으로 1933년 12월 말의 호림현성(虎林縣城) 진공전투를 꼽을 수 있다. 1934년 2월 특무영을 ‘요하 민중 반일 유격대대’로 개편하였다. 처음에는 최용건이 대리 대장을 맡았으나, 나중에 한인 이학복(李學福)이 대장을 맡고 박진우가 정치위원을 맡았다.

설립 목적

중국 공산당 요하중심현위원회의 주도로 결성된 반일회와 특무대를 기반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이후 요하 노농 의용군, 요하 민중 반일 유격대로 개편되어 북만주 지역 여러 민족의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실현을 통한 항일 무장 투쟁과 대중운동을 실천하였다.

변천

1935년 8월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 4단, 같은 해 9월 동북 인민 혁명군 제4군 제4단으로 개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2년 봄 중국 공산당 요하중심현위원회의 책임자인 박진우는 반일회를 조직하여 유격대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933년 요하 노농 의용군 대장 최용건과 이학복 등은 요하현 삼의둔(三義屯)에 군정훈련반을 설치하여 7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을 두 달 동안 훈련시켜 유격대에 참가하게 하였다. 또한 같은 해 12월 27일 부근의 호림현(虎林縣) 읍내 진공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군 20여 명을 사살하고 기관총 5자루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에도 중·소 국경지대의 일본군과 괴뢰 만주국군을 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의의와 평가

요하현은 북만주의 중·소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인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 초 이 지역의 항일무장 투쟁은 박진우, 최용건, 김문형 등 한인 지도자들이 주도하였다. 이러한 요하 유격대의 활약은 일제와 괴뢰정부 ‘만주국’의 통치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특히 요하 유격대의 한인 대원들은 한 때 항일투쟁을 위한 민족연합부대를 내세우며 “한국 민족혁명운동을 원조하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활동한 사실이 주목된다. 1935년부터 1937년 말까지 동북 인민 혁명군 제4군과 동북 항일 연군 제7군, 나아가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으로 발전하여 1930년대 후반 북만주중·소 국경지대의 항일 무장 투쟁을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 와다 하루끼(이종석 옮김), 『김일성과 만주 항일전쟁』(창작과비평사, 1992)
  • 장세윤,『허형식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7집 (독립기념관, 1993)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아세아문화사, 1999)
  • 양소전 외, 『중국조선족 혁명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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