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유일당 재만 촉진회

한자 民族 唯一黨 在滿 促進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길림시 화전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반일 통일 전선 단체
설립자 홍진|김응섭 등
설립 시기/일시 1920년대 후반
해체 시기/일시 1928년
최초 설립지 길림성 화전현, 반석현
정의

1920년대 후반 만주 지역 한인 사회의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등 3부의 민족 운동 단체를 통합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

개설

1920년대 만주 일대는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의 3부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전 민족의 항일 투쟁 역량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3부 통합이 과제였다. 이에 정의부 주도로 1928년 5월 12일부터 26일까지 18개 단체 대표 39명과 상해, 북경에서 온 대표들과 ‘전 민족 유일당 조직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함에 따라 재만 운동 단체 협의회와 민족 유일당 재만 촉성회를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경과

민족 유일당 재만 촉성회는 지방적 또는 파벌적 성격을 가진 기성 단체를 모두 해체하고 개인 본위 조직론을 주장하는 북만 청년 동맹, 남만 청년 동맹, 동만 청년 동맹, 송강 청년 동맹, 여족 공의회, 합장 청년회, 재만 농민 동맹 등 7개 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일체의 생활이 평등한 신국가를 건설할 민족 유일당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변천

1928년 7월 3부 통일 회의는 결성에 앞서 정의부를 이탈하여 민족 유일당 재만 촉성회에 가담한 일부가 길림성김응섭의 집에 모여 임시 간부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김동삼, 이종건, 김상덕, 배활산 등이 모여 유일당 촉성의 조직과 선전을 이행하기 위해 각각 구역을 분담하는 한편 만주 일대 각지에 적극적으로 선전할 것을 결의했다. 이해 11월 반석현에서 민족 유일당의 이름으로 동맹 규약을 발표하고 맹원을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민부의 군정파와 참의부 일부가 민족 유일당 재만 촉성회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에 12월 하순 길림에서 신민부 군정파와 정의부 일부는 양부의 해체를 선언하고 과도적 기관으로 혁신 의회를 조직하였다.

의의와 평가

민족 유일당 재만 촉성회는 3부 통합 과정에서 조직되었으며 이후 혁신 의회를 통해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 채근식, 『무장 독립운동 비사』(대한민국 공보처, 1949)
  • 『독립운동사』 4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3)
  • 강만길, 『고쳐쓴 한국 현대사』(창작과 비평사, 1994)
  • 한국 독립 유공자 협의회, 『중국 동북 지역 한국 독립운동사』(집문당, 1997)
  • 양소전 외, 『중국 조선족 혁명 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 정원옥, 「재만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전민족 유일당 운동」(『백산 학보』 19, 1975)
  • 김희곤, 「한국 유일당 독립 촉성회에 대한 일고찰」(『한국 학보』 33, 1983)
  • 박영석, 「민족 유일당 운동」(『경희 사학』 14, 1987)
  • 황민호, 「만주 지역 민족 유일당 운동에 관한 연구」(『숭실 사학』 5, 1988)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