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國 獨立黨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흑룡강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
| 설립자 | 홍진|신숙|이청천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30년 7월 |
| 해체 시기/일시 | 1933년 |
| 최초 설립지 | 북만주 위하현 |
1930년 7월 북만주 위하현(葦河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참의부·신민부의 3부 통합운동이 결렬된 후, 북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한족 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와 생육사(生育社)가 중심이 되어 1930년 7월 결성하였다. 조직은 중앙에 6개 위원회를 두고, 지방에 지당부(支黨部)와 구당부(區黨部)를 두었다. 중앙위원장은 홍진(洪震)이었고, 각 위원장은 총무 신숙(申肅)·조직 남대관(南大觀)·선전 안훈(安勳)·군사 이청천(李靑天)·경리 최호(崔灝)·감찰 이장녕(李章寧)이었다.
당강(黨綱)은 삼본주의(三本主義), 즉 민본정치(民本政治)의 실현, 노본경제(勞本經濟)의 조직, 인본문화(人本文化)의 건설을 채택하였다. 당군(黨軍)으로 이청천을 사령관으로 한 한국 독립군(韓國獨立軍)을 조직하였고, 이 지역의 합법기관인 한족 자치 연합회(韓族自治聯合會)를 지도 육성하면서, 북만주지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족자치연합회에는 군사부, 실업부, 재무부, 교육부, 조직부 등을 설치하였으나 내부 분열로 인하여 바로 해체하였다. 이에 1931년 2월 한족 농무 연합회와 한족 동맹회를 조직하여 반일 활동을 계속하여 전개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중앙위원회 결의를 통해 한국독립군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중국의 이두(李杜)·정초(丁超) 등이 이끄는 길림자위군(吉林自衛軍)을 비롯하여 고봉림(考鳳林)·오의성(吳義成) 부대 등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서란현(舒蘭縣) 전투·쌍성보(雙城堡) 전투·경박호(鏡泊湖) 전투·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33년 10월 오의성 부대와 마찰을 빚어 무장해제 당하였다. 이 같은 곤경에 처해있을 때, 김구(金九)로부터 중국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인 특별반(韓人特別班) 운영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 이에 홍진을 비롯한 당과 군의 인원들이 중국 관내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이청천·오광선(吳光鮮) 등은 낙양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홍진을 비롯한 당의 주요 간부들은 남경(南京)에서 한국 혁명당(韓國革命黨)과 합당하여, 1934년 2월 신한 독립당(新韓獨立黨)을 결성하였다.